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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0375
한자 慶尙 監營
영어공식명칭 Gyeongsang-gamy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유기선

[정의]

조선 후기 대구 도호부에 두었던 경상도 감영.

[조선 초기 8도제의 성립]

조선은 건국 이후 국가 지배 체제 강화 및 탄력적인 운영을 위하여 고려의 5도 양계제를 8도(道) 체제로 바꾸었다. 이로 인하여 각 도를 관리하기 위한 관찰사, 즉 감사(監使)를 파견하였다. 감사는 감영(監營)이 설치되는 관할 지역의 행정 및 사법권과 나아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혹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도 겸직하였으므로 군사 지휘권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감사가 업무를 처리하는 감영이 설치된 지역은 그 도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조선 전기의 경상 감영]

경상 감영(慶尙監營)은 최초 경주부(慶州府)에 설치되었다. 하지만 1407년(태종 7)에 경상도의 경우 타 도에 비하여 면적이 넓고 인구 수가 많다는 이유로 인하여 이를 양도(兩島)로 구분하였다. 그래서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여 서쪽을 우도(右道)로 동쪽을 좌도(左道)로 구분하였으며, 우도의 감영은 상주목(尙州牧)에 좌도의 감영은 기존의 경주부에 설치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이 조세 수취에 혼란을 야기하게 되자 1408년(태종 8)에 다시 경상도를 통합하여 감영을 상주목에 두었다. 하지만 경상도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정부 대신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정치적인 상황이 계속해서 변화함에 따라 경상도는 계속해서 분리와 통합을 거듭하며 감영이 옮겨 다니게 되었다.

[대구 도호부와 경상 감영]

경상 감영이 대구 도호부(大丘都護府) 달성에 처음으로 세워지게 된 시기는 1596년(선조 29)이다. 임진왜란의 발발 이후 조선 조정은 대구 도호부를 군사적 요충지로서 주목하게 되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길목으로서 경상도를 장악한 왜군의 이동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대구 도호부에 감영이 설치되었지만 이듬해인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인하여 감영이 화재로 소실되고 만다. 그래서 안동 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감영이 이전되었지만, 접근성과 교통의 문제로 인하여 1601년(선조 34)에 다시 대구 도호부로 옮겨 오게 되었다. 경상 감영의 이동으로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일대가 포함된 대구 도호부는 경상도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감영을 중심으로 한 도로망의 확충 및 개선, 유동 인구 증가 및 인구 증대에 따른 상업의 발전,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병영 기능 강화 등 다양한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달성군은 대구광역시 도심 지역 배후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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