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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군 보통학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0392
한자 達城郡 普通學校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에 설립된 보통학교.

[개설]

일제의 교육 방침은 1911년에 공포된 「조선 교육령」에 잘 나타나 있다. 핵심 내용은 이른바 충량(忠良)한 제국 신민(臣民)과 그들의 부림을 잘 받는 실용적인 근로인·하급관리·사무원 양성하는 것이다. 또 보통학교는 "보통의 지식·기능을 부여하고 특히 국민된 성격을 함양하며, 국어[日語]를 보급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실업 교육과 전문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곧 「조선 교육령」은 일본어 보급을 통한 충성스럽고 선량한 '제국의 신민' 양성과 노동력 착취를 위한 실업 학교와 전문학교에 초점을 두었다. 조선 총독부는 제2차 「조선 교육령」[1922년 2월 4일]을 통해 문화 통치의 시행을 위해 일본 학제와 동일하게 개편하여 일본식 교육을 강화하였다. 제3차 「조선 교육령」[1938년 3월 3일]과 제4차 「조선 교육령」[1943년 4월 1일]은 중 일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황국 신민화에 의한 전시 동원 체제의 기반이 되었다.

[내용]

달성군 내 보통학교는 1920년대 8개교가 설치되었다. 1930년대의 경우 달성군 관내 각 면에 1개교 꼴인 15개가 설치되었다. 이 학교 가운데 교장은 성북 보통학교[교장 김원옥]를 제외하고는 모두는 일본인이었다.

<표 1>1930년대 달성군 보통학교 현황

<표 1>에서 나타나듯 달성군 내 보통학교 재학생은 4,269명이었다. 한 학급은 평균 63.7명으로 구성되었다. 일제 강점기 달성군 관내 수학 대상 인구에서 실제 교육의 기회를 얻은 아동은 1929년의 경우 <표 2>와 같다.

<표 2>공립 보통학교 아동 입학 상황[1929년 4월 10일 현재. 위는 달성군, 아래는 경상북도]

<표 2>에서 나타나듯 달성군 관내 입학 지원자 769명 중 실제 입학 허가가 난 수는 618명이었다. 곧 입학 지원자 중 80% 정도가 입학되었고, 나머지 20%는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이는 일제의 지배하에 조선인의 교육 기회가 평등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일제의 지배 구조에서는 기본적인 교육 기회가 보장되어야 할 초등학교의 교육 기회마저도 충분하지 못한 것이 엄연한 실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달성군 인구에서 입학 지원자 수가 아니라 입학해야 할 대상자를 기준으로 그 규모를 파악한다면,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아동의 규모는 훨씬 커진다. 따라서 일제의 교육 정책으로는 조선인의 충분한 초등 교육이 보장될 수 없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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