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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0549
한자 鄭殷德 遺惠 不忘碑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로 1003[용계리 534-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동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79년연표보기 - 정은덕 유혜 불망비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05년 - 정은덕 출생
현 소재지 정은덕 유혜 불망비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로 1003[용계리 534-1]지도보기
성격 공덕비
관련 인물 정은덕
재질 석재
크기(높이) 귀부 42㎝[높이], 비신 154㎝[높이]|54㎝[너비]|29㎝[두께], 옥개 43㎝[높이]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에 있는 개항기 정은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건립 경위]

비문에 의하면 정은덕(鄭殷德)[1805~?]은 매번 흉년이 들 때면 곡식을 내어 사람들을 구제해 주었고, 아들 정노윤(鄭魯潤), 손자 정기근(鄭冀根)도 같은 일을 행하였다고 한다. 이에 1879년(고종 16) 조암면민이 정은덕 3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정은덕 유혜 불망비(鄭殷德遺惠不忘碑)를 건립하였다. 정은덕과 관련하여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858년(철종 9) 5월 23일에 ‘경희궁 위장 정은덕(慶熙宮衛將鄭殷德)’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비문 외에 정은덕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잘 확인되지 않는다.

[위치와 현황]

정은덕 유혜 불망비는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에 있는 힐크레스트[구 허브힐즈] 매표소에서 위로 올라가다가 좌측으로 계곡을 건너 조금 올라가면 운재헌(芸齋軒)이라는 정자가 보이는데, 이 정자의 우측 편에 위치한다. 비는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어 형태가 온전하며, 비문의 마멸도 없는 상태이다.

[형태]

비석은 방형의 기단 위에 귀부와 비신을 세우고 옥개석(屋蓋石)을 올렸다. 귀부 높이 42㎝, 비신 높이 154㎝, 너비 54㎝, 두께 29㎝, 옥개 높이 43㎝이다.

[금석문]

비석의 앞면 가운데에는 '가선대부 정공 휘 은덕 유혜 불망비(嘉善大夫鄭公諱殷德遺惠不忘碑)'라고 써 있다. 앞면 오른쪽에는 "아! 공의 삼대가/ 우리 천명을 살리셨네/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흉년을 구제하며/ 곤궁함을 제도하고 가난을 구휼하셨네[韙公三世 活我千人 給需救荒 濟困恤貧]"라고 기록되어 있다. 앞면 왼쪽에는 "은혜는 죽은 사람 산사람 모두에게 미치고/ 혜택은 이웃 고을까지 넉넉하게 했다네/ 작은 비석에 공적을 새길 만하고/ 많은 사람들도 모두 어질다 하네[惠及幽明 澤洽鄕隣 片石堪語 衆口咸仁]"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 옆면에는 "숭정 기원 후 오 기묘 사월 일 조암면립(崇禎紀元後五己卯四月日 租巖面立)"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뒷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은 자가 성화(聖化)이고 본관은 연일이다. 순조 을축년[1805]에 태어났고 철종 무오년[1858]에 음덕(蔭德)으로 가선대부에 올랐다. 타고난 자품이 순인(淳仁)하고 의(義)를 좋아했다. 농장 약간을 이곳에 두었는데 매번 흉년이 들 때면 곡식을 내서 구제해 주었고 절기마다 돈을 내어 구제해 주어서 조암면민들이 공에게 의지했다. 공의 아들 노윤(魯潤)도 성품이 어질고 효성스러워 선친의 뜻을 한결 같이 따랐다. 병인년 가뭄으로 흉년이 들었을 때 특별히 희사해서 넉넉히 구제해 주었고, 무진년 여름에 저자에 쌀이 없자 또한 저자에 쌀을 내어놓았다. 영문과 암행어사가 포상으로 미육(米肉)을 하사하고 아울러 장계(狀啓)를 올렸다.

공의 손자 기근(冀根)도 선조의 업적을 잘 이어받아 병자년 대기근에 쌀 1섬에 90전에 해당하는데도 특별히 전곡(錢穀)을 내어 서상, 수남, 상서 3개 면을 구제하여 죽을 목숨들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우리가 굶주려서 거의 죽어가는 한 면의 사람들이었는데, 아! 황천이 우리 삶을 버리지 않아 3세의 어진 이를 내려주었네. 인(仁)에 감동한 바 의(義)가 절로 생겨나니, 뭇사람들 논의 크게 일어나 그 공적 비석에 새겨 조금이나마 대략 기록하노라. 광서 기묘[1879] 여름 4월[公字聖化延日人 純廟乙丑生 哲廟戊午德陰陞嘉善大夫 天姿淳仁好義 置庄若干于玆 每歉荒則賑之以穀其 節歲則需之以銅 巖之一面賴公是依公之子魯潤性又仁孝一遵先志自丙寅旱荒特捐優恤戊辰夏米不市又賑于市營褒繡褒賜米肉並啓公之孫冀根又善繼述丙子大饑米至石九十錢特出錢穀救西上守南上西三面濱死之命又甦我顑頷近止一面之人於乎皇天不遺我生降此三世之仁仁之所感義自由生僉議雷發刻之石略敍萬一云爾光緖己卯夏四月]" 맨 아래에는 도감(都監) 조정의(趙廷誼), 감역(監役) 조성택(趙性宅), 그리고 서명규(徐明奎), 이지련(李枝連), 최경술(崔敬述), 이교형(李敎馨) 네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정은덕 유혜 불망비는 달성군의 인물에 대한 재조명과 함께 달성군 지역민들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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