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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천리 유적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0642
한자 冷泉里 遺蹟
영어공식명칭 The Ancient Site at Naeongchon-ri, Dals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 852-2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창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3월 8일~2004년 9월 5일 - 냉천리 유적 영남 문화재 연구원이 발굴 조사
현 소재지 냉천리 유적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 852-2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영남 문화재 연구원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천평2길 43[천평리 221]
성격 유적
면적 3,598㎡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에 있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적.

[위치와 현황]

냉천리 유적(冷泉里遺蹟)은 현재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 가창~청도 구간 중 가창 중학교 진입로와 가창 초등학교 사이의 도로 일부에 위치한다. 조사 지역은 신천의 상류 지역으로 곳곳이 산록으로 이어져 평야는 없으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대일리 일대의 신천 범람원과 산록 산상지의 곡간 평야에서 일부 논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조사 구역은 당시 지방도와 접해 있는 곳으로 도로의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조사 전 냉천리 유적 일대는 대부분 논으로 경작되고 있었고 현재에도 주변은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가창~청도 간 국가 지원 지방도 확장 공사로 인해 영남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2000년 4월 1일부터 같은 해 4월 15일까지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조사 결과 공사 구간에서 냉천리 고인돌 떼와 대일리 고인돌 떼, 옥분리 추정 고인돌 떼, 삼산리 추정 고인돌 떼, 삼산리 돌무지 떼 및 토기 산포지 등이 확인되었다. 이들 유적에 대해서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연차적으로 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냉천리 유적은, 2002년 12월 20일부터 2003년 3월 9일까지 실시된 냉천리 고인돌 떼Ⅳ 및 대일리 고인돌 떼 지역에 대한 시굴 조사 결과 다수의 주혈과 구를 비롯하여 기와편, 소토, 목탄 등이 확인된 유구를 중심으로 3,598㎡에 대하여 2004년 3월 8일부터 그해 9월 5일까지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삼국 시대의 고상식(高床式) 건물 터 8동·수혈 유구 7기·구상 유구 5기 외 다수의 주혈과 고려 시대의 수혈 유구 4기·구상 유구 2기 외 다수의 주혈, 조선 시대의 구상 유구 1기와 기와 배수로 1기 등 총 28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토도류 130점, 금속류 19점 등 총 149점이다.

고상식 건물 터는 전체적으로 고루 분포하며, 주변으로 일정한 정형성은 확인되지 않으나 다수의 주혈이 있는 것으로 보아 더 많은 건물 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1호는 평면 형태가 방형이며, 정면 2칸, 측면 3칸의 구조이다. 주혈의 평면 형태는 주로 원형·부정형이고, 단면 형태는 'U' 자형과 이단 굴광 형태를 혼용하였다. 주혈의 간격은 정면 200㎝ 정도이고 측면 150㎝이다. 그리고 주혈 바닥에서 직경 25~30㎝의 목주흔이 확인되었다. 기와 배수로는 구상 유구 8호를 일부 파괴하고 조성되었다. 상단부·하단부는 현대에 조성된 교란구에 의해 파괴되었고, 진행 방향은 동서이다. 배수로에서 확인된 기와들은 2점의 수키와가 원통형으로 맞물려 연결되어 긴 통로를 이루고 있다. 기와의 방향은 바닥 면의 경사에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여러 점의 기와를 연결하여 배수로 형태로 축조하였다. 수키와의 제작 기법과 '창해파문'이 타날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의 유구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냉천리 유적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생활 유구가 확인되어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 지역이 선사 시대 이래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하였음을 알려 주는 동시에 당시의 생활상을 복원하는 데 있어 기초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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