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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0813
한자 朴文鉉
영어공식명칭 Park Munhyeon
이칭/별칭 경숙(敬叔),유정(酉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98년연표보기 - 박문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48년 - 박문현 증광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848년 - 박문현 사헌부 지평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49년 - 박문현 홍문관 수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855년 - 박문현 초산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858년 - 박문현 순천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859년 - 박문현 안안 군수 부임
활동 시기/일시 1859년 - 박문현 진도 유배
활동 시기/일시 1872년 - 박문현 이조 참의 임명
몰년 시기/일시 1875년연표보기 - 박문현 사망
출생지 하빈현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거주|이주지 하빈현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소|단소 박문현 묘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오도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순천
대표 관직|경력 이조 참의

[정의]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경숙(敬叔), 호는 유정(酉亭). 증조할아버지는 전설사 별검(典設司別檢)을 지낸 박성준(朴聖俊)이고, 할아버지는 증이조 참판(贈吏曹參判) 박광호(朴光昊)이다. 아버지는 박기녕(朴基寧)이며, 어머니는 최의중(崔宜重)의 딸 영양 최씨(永陽崔氏)와 윤치정(尹致禎)의 딸 해평 윤씨(海平尹氏)이다. 부인은 권인우(權仁祐)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활동 사항]

박문현(朴文鉉)[1798~1875]은 1848년(헌종 14)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였으며,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1849년(철종 즉위년)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에 임명되었다. 이후 교리(校理)·응교(應敎),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장령(掌令)·집의(執義), 병조 정랑(兵曹正郞), 금위종사관(禁衛從事官)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850년(철종 1) 육조(六條)의 진면소(陳勉疏)를 올려 왕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1853년(철종 4)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으로 있으면서 『순조대왕추상존호대왕대비전가상존호도감의궤(純祖大王追上尊號大王大妃殿加上尊號都監儀軌)』 편찬에 참여하였다. 1855년(철종 6) 초산 부사로 부임하였다. 변방이라 풍속이 사나웠는데, 향약(鄕約)을 시행하는 등 교화를 위해 힘썼다. 1858년(철종 9) 순천 부사로 부임하였다, 1859년(철종 10) 안악 군수로 옮겼다. 이때 사헌부 집의 정재영(丁載榮)이 박문현을 탄핵하였다. 순천부와 안악군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뇌물을 받았다는 구실이었다. 이로 인해 박문현은 진도로 유배를 가, 3년 뒤에 풀려났다.

그 후 고향인 대구도호부 묘골[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묘리]로 돌아와 은거하였다. 1863년 철종이 승하하였는데, 박문현은 관직에 있지 않아 도성으로 가지는 못하고, 도성 근처 노량 사원(露梁祠院)[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었던 민절 서원(愍節書院)으로 추정]에서 부곡(赴哭)하였다. 1872년(고종 9) 이조 참의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오도리 지족당(知足堂)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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