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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0837
한자 具文遊
영어공식명칭 Koo Munyu
이칭/별칭 사아(士雅),예곡(禮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44년연표보기 - 구문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90년 - 구문유 진사시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92년 - 구문유 현풍 현감에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01년 - 구문유 고령 현감에 부임
몰년 시기/일시 1718년연표보기 - 구문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97년 - 구문유 현풍현 백성들이 선정비 건립
출생지 서울특별시
묘소|단소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능성(綾城)
대표 관직|경력 현풍 현감

[정의]

조선 후기 현풍 현감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사아(士雅), 호는 예곡(禮谷). 증조할아버지는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을 지낸 구혜(具寭), 할아버지는 진사(進士) 구인지(具仁至)이다. 아버지는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지낸 구음(具崟), 어머니는 통덕랑(通德郞) 임경달(任慶達)의 딸 풍천 임씨(豊川任氏)이다. 부인은 관찰사(觀察使)를 지낸 윤임(尹臨)의 딸 남원 윤씨(南原尹氏)와 허량(許量)의 딸 양천 허씨(陽川許氏)이다.

[활동 사항]

구문유(具文遊)[1644~1718]는 1644년(인조 22) 한양(漢陽)에서 출생하였다. 1678년(숙종 4) 이현일(李玄逸)을 스승으로 섬기기 시작하였는데, 이현일은 구문유가 가난한 것을 보고 녹봉을 떼어 보내 주기도 하였다. 음보(蔭補)로 사산감역(四山監役)이 되었으며, 1690년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다. 1692년(숙종 18) 현풍 현감(玄風縣監)으로 부임하였으며, 형조 좌랑(刑曹佐郞)을 거쳐, 1701년(숙종 27) 고령 현감(高靈縣監)이 되었다. 구문유는 현풍 현감으로 5년간 재임하면서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 향교(鄕校)에 고을 유생들을 모아 학문을 가르쳤으며, 고을의 70세 이상 노인 80여 명을 모아 공당(公堂)에서 양로연(養老宴)을 개최하는 등 교육과 교화 정책에 힘썼다. 임기를 마치고 현풍현을 떠나게 되자, 고을 백성들이 선정비(善政碑)를 세웠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2권 1책의 『예곡집(禮谷集)』이 전한다. 문집 부록(附錄)에 수록된 비문(碑文)은 현풍 현감으로 재임하였을 때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현풍현 백성들이 세운 선정비의 비문이다. 또한 「양로연서(養老宴序)」는 현풍 현감으로 있으면서 양로연을 개최하자, 그 자리에 참석하였던 곽수구(郭壽龜)구문유를 기리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묘소]

묘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미라산(彌羅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에 증직(贈職)되었다. 1697년(숙종 23) 경상도 현풍현의 백성들이 현풍 현감 구문유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선정비인 '현감 구후 문유 선정비(縣監具候文遊善政碑)'를 세웠다. 선정비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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