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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군 내 사립 학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1770
한자 達城郡 內 私立 學校
이칭/별칭 달성군 사립 학교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에 설립된 사립 학교.

[배경]

1929년 기준 달성군 내 수학 대상 인구 가운데 실제 교육 기회를 얻은 아동은 전체 지원자 769명 중 618명, 곧 80%였고 나머지 20%는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이는 일제의 지배하에 조선인의 교육 기회가 평등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당시 달성군 인구에서 입학 지원자 수가 아니라 입학해야 할 대상자를 기준으로 그 규모를 파악한다면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아동의 규모는 훨씬 커진다. 따라서 일제의 교육 정책 아래에서는 조선인의 충분한 초등 교육이 보장될 수 없었다. 이에 사립 학교의 설립은 반드시 필요한 교육 기관이었다.

[달성의 사립 학교]

당시 달성군 화원면 인흥리[현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사립 인흥 학교(仁興學校)가 설립되어 운영되었다. 인흥 학교의 설립자는 곽재헌이었으며, 학교의 설립 시기와 학교 규모 등의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는 실정이다. 또 당시의 달성군 월배면에 설립된 사립 덕산 학교(德山學校)를 들 수 있다. 설립 시기는 1927년 3월 19일에 제6회 졸업식을 거행한 것을 고려할 때, 1921년 무렵인 것으로 보인다. 설립자는 당시 달성군 월배면에 거주한 유지 윤상태(尹相泰)였다. 제6회 졸업식에서 졸업생 13명 중 우등생으로 학생 우종기(禹宗基)가 선정되어 상을 받았다. 1930년 4월 무렵에는 당시 달성군 월배면 유지들이 월배면에 보통학교를 유치하기 위하여 활동을 벌였는데, 사립 학교가 유치된다면 덕산 학교의 건물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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