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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A010103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다리목마을
집필자 박경용

[정의]

청도김씨 재사 구목당 건립과 중건

[청도김씨 입향조 재사 구목당]

구목당(九睦堂)은 다리목 마을 청도김씨 입향조인 처사(處士) 창원공(昌元公)과 선전관(宣傳官) 유원공(有元公) 형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구목당 명칭은 건립 취지를 대변하듯 위로 고조, 아래로는 증손에 이르기까지 입향조 후대 모든 자손들의 ‘화목’을 상징한다. 이러한 ‘화목’의 도리와 실천은 <구목당소지(九睦堂小識)>, <기(記)>, <중건기(重建記)> 등 구목당의 여러 현판들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구목당은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1391번지(다리목 중앙길 14-5)에 남서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재실 본관과 출입문인 대문채 2개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정면 4칸과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 구조로 주변은 토석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다. 재사의 평면은 가운데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들이고 앞쪽에 반 칸 폭의 툇간이 설치된 중당 협실형(中堂 夾室形)이다. 정면 기둥만 원기둥을 사용하였으며, 기둥 상부는 무익공에 소로(小櫨) 수장하였다. 상부구조는 중량(中樑) 위에 원형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 한 5량(五樑) 가구(架構)에 회분벽으로 마감하였다.

[백파와 계파 간 화합의 상징, 구목당]

청도김씨 다리목 마을 일족들은 입향조 창원공과 유원공 두 형제의 묘소가 원산(黿山)의 동일 공간에 있음에도 백파(伯派), 계파(季派)로 나뉘어 매년 따로 추향제(秋享祭)를 올리고 제물도 각기 준비하였다. 백파는 종가이나 위토답이 300평밖에 없어 재물이 적어 서로 화합하고 정겨워야 할 자리에서 소외감을 갖게 되었다.

이런 점을 안타깝게 여겨오던 중 만송공(晩松公) 석주(錫柱) 종인(宗人)의 제안으로 1916년 마을 가운데 집 한 채를 매입하여 백파, 계파가 함께 하는 재사(齋舍) 공간으로 삼았다. 이에 백ㆍ계(伯ㆍ季)파는 종재(宗材)의 많고 적음을 떠나 향사(享祀) 공물(供物)을 같이 마련하여 함께 봉행해 왔다. 일족들은 한마음으로 기뻐하며 입향조 두 분이 처음 다리목 마을에 자리 잡을 때 보였던 두터운 정의(情誼)로 되돌아갔다.

[구목당 중건과 6.25 전란 이후의 복구 전말기]

백파, 계파의 화합 이후 각종 모임에서 참여자 수가 늘어나자 재실 규모를 확장시킬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재정 문제로 고민하던 중 1927년 구정을 기해 일족들이 의논한 끝에 원산에 딸린 논 800평을 팔아 중건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외에 각 파의 계돈과 개인 찬조금을 보태고, 연체목과 공사 인건비와 식대 등은 각호에서 부담하였다.

1927년 2월에는 중건 공사를 시작하여 8월 말 경 정당(正堂) 5칸과 문간채 3칸의 재사를 완공하여 ‘구목당’으로 이름 지었다. 구목당 중건에 소요된 총공사비는 식대를 제외하고 1,210원 22전이었다. 청도김씨 일족의 화합과 정의가 재사의 명칭 ‘구목(九睦)’의 의미 속에 서광되어 비쳐졌다.

구목당은 이후 1950년 6.25 전란으로 마을 전체가 전소될 때 불타버리는 수난을 겪었다. 이에 1955년 종인 영하(永河)가 발의하여 대종중 화수회에서 재실 복구를 결의하고, 당해 가을 착공하여 이듬해인 1956년 3월 완공하였다. 건립 재원은 종인 윤식(允植)이 상당 부분을 대고 전 종인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충당하였다. 기증한 중요 목재들은 논공면 갈실골과 대밭골 등에서 채취하여 종인들의 부역으로 목도하여 운반하였다.

[구목당은 청도김씨 종친회 구심점]

매년 양력 4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구목당 종실에서 청도김씨 화수회(花樹會)가 개최된다. 이날은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교리공파 종인들이 모두 모여 우의를 다지고 향사 봉행을 비롯한 종친회 사업을 논의한다. 또한 종친회의 연간 수입과 지출 내역도 보고한다. 예전 화수회 날은 재실 마당에다 솥을 걸어놓고 돼지도 잡는 등 종친들의 축제였다. 학생들에게는 공책 등 학용품도 제공했다. 지금은 참석 인원도 적어 출장 뷔페를 이용한다.

매년 가을에는 편리한 날을 잡아 각 파 대표자들이 모여 문중 이사회 결산도 구목당 종실에서 개최한다. 매년 음력 10월 15일의 입향조 향사 봉행 시에는 종인들이 구목당에 한데 모여 제물을 비롯한 제반의 준비를 한다. 이로써 구목당은 다리목 마을 청도김씨 종친들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이자 화합의 상징적 공간이 되고 있다. 다음은 이와 같은 종친들의 뜻을 담은 구목당 원운(原韻)의 내용으로 후손 석주가 지은 원문을 증손 정공(貞恭)이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당옥(堂屋)을 세운 오늘 구목당이라 이름하였으니

온 일족들이 정의(情誼)와 은덕(恩德)을 함께 기뻐하네.

들 밖에 갈라져 흐르는 물도 그 근원은 하나이고

동산에 열지어 있는 나무들 가지들도 그늘 이어비치니

항시 오륜(五倫)을 지키면 편안함을 잃지 않으리라

백 번 인내하는 집안은 마땅히 얻는 바가 가장 크리라

자손들에게 훈계(訓戒)되는 바가 있으니 오래가게 하고

조상의 명예를 돌아보고 은덕과 의로움을 잊지 말지다.

[참고 문헌]

<九睦堂 小識>

<九睦堂 記>

<九睦堂 營建 顚末記>

<九睦堂 重建記>

김만채, 『청도김씨 교리공파 교항계 참고록』(2016)

사단 법인 대구 문화유산, <구목당(九睦堂)> 안내판

청도김씨 교리공파 교항계 문중회, 『略史記』(2008)

[정보 제공자]

김선린(남, 1930년생, 대구 광역시 달성군 옥포면[현 옥포읍] 교항리 다리목 마을 전 이장)

김해순(남, 1941년생, 대구 광역시 달성군 옥포면[현 옥포읍] 교항리 다리목 마을 청도김씨 교리공파 종손)

김정옥(남, 1942년생, 대구 광역시 달성군 옥포면[현 옥포읍] 강림리 야헌 처사 유적 보존회 회장)

김만채(남, 1948년생, 대구 광역시 달성군 옥포면[현 옥포읍] 강림리 청도김씨 교리공파 교항계 문중회 회장)

김종구(남, 1950년생, 대구 광역시 달서구 장기동 청도김씨 교리공파 교항계 문중회 총무)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4.29 행정지명 현행화 옥포면에서 옥포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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