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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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에 있는 성주 도씨 동성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도촌 마을은 성주도씨(星州都氏) 대종파(大宗派) 집성촌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구광역시의 배후 도시로 아파트와 상가가 밀고 들어와 아파트촌으로 변모한 가운데, 도씨들의 집성촌이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성주도씨는 고려태조(太祖)가 후삼국을 통일할 당시 명망이 높은 지방 호족이었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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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도신수(都愼修)[1598~1650]는 팔거현[현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 ]에서 태어나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과 한강(寒岡) 정구(鄭逑)에게 수학하였다. 당쟁의 영향으로 주로 외직에 있었지만 백성들의 구휼과 교화 등에 힘써 백성들이 도신수의 공을 기려서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고, 왕명으로 내구마(內廐馬)가 하사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부임한 영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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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군 하빈현에서 출생한 학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해중(諧仲), 호는 서재(鋤齋). 고조할아버지는 첨절제사 도의문(都義文)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전력 부위 도순경(都舜卿)이다. 할아버지는 경상 좌우후 도흠조(都欽祖), 아버지는 증 한성부 우윤 도원결(都元結)이다. 어머니는 증 참의 홍제문(洪悌文)의 딸 부림 홍씨(缶林洪氏)이다. 부인은 증 판결사 이우겸(李友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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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도호부 출신의 열녀. 본관은 순천(順川). 아버지는 이충경(李忠敬)이다. 도성유(都聖兪)[1571~1649]의 8대손 도진극(都鎭極)의 처 순천이씨(順天李氏)는 나이 26세 때 남편과 사별하고 후사를 잇지 못함에 애통해 하며 남편의 장사를 치른다. 이씨는 모든 예식과 절차에 성의를 다한 뒤에 친정집과 시집의 부모님께 애틋하고 절절한 마음을 담은 유서를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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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도호부 출신의 열녀. 본관은 아주(鵝洲). 아버지는 신달모(申達謨)이다. 1776년(영조 52) 서재공(鋤齋公) 도여유(都汝兪)의 6대손 도필상(都必祥)의 처 아주신씨(鵝洲申氏)는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후사마저 없어 자결하였다. 이에 평소 성격이 온후하고 인심이 후덕하던 주인의 은덕을 잊지 않고 노비 설만(雪滿)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비용을 마련하여 극진히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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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도호부 출신의 열녀. 본관은 월성(月城). 아버지는 최진극(崔鎭極)이다. 도성유(都聖兪)의 6대손인 사인(士人) 도필해(都必海)의 처 월성최씨(月城崔氏)는 겨우 나이 스무 살에 남편을 여의게 되었다.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어린 미망인에게 쏟아지는 동정 어린 조문(弔問)에 최씨는 남편을 따라 죽고 싶었으나 때마침 임신 중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복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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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 속하는 법정리. 서재리(鋤齋里)는 자연 마을 서재(鋤齋)·도촌(都村)에서 나온 명칭으로, 이 마을이 금호강 변의 섬같이 생긴 지역에 있어 섬 도(島) 자를 써서 도촌(島村)이라고 하였는데, 성주 도씨(星州都氏)가 입향한 후 도촌(都村)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 마을 도여유라는 선비의 아호(雅號)를 따서 서재라고 불렀다고도 하고, 와룡산(臥龍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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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세거 성씨(世居姓氏)는 어떤 가문이나 인물이 달성 지역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세거 성씨는 입향조(入鄕祖)가 있게 마련인데, 입향조는 실존한 인물로서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역사가 오래되어 막연히 성씨만 구전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성씨 제도는 중국 제도의 영향을 받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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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지역의 언론·출판 활동. 달성군 지역의 언론 활동은 크게 신문·잡지와 인터넷 방송으로 나눌 수 있는데, 2016년 현재 1개소의 주간지와 5개소의 인터넷 신문, 1개소의 케이블 방송이 있다. 출판업은 책·잡지·소책자를 인쇄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판매하거나 배포하는 일련의 행위나 사업을 통칭한다. 2014년 12월 통계에 따르면, 달성군 내 신문·잡지 및 정기 간행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