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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0596
한자 鹿洞書院
영어공식명칭 Nokdong Seowon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길 218[우록리 585-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백지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94년연표보기 - 녹동서원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72년 - 녹동서원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길 218로 이건, 증축
훼철|철거 시기/일시 1871년 - 녹동서원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4년 - 녹동서원 중건
현 소재지 녹동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길 218[우록리 585-1]지도보기
성격 서원
정면 칸수 5칸[숭의당]|3칸[녹동사]|3칸[외삼문]|3칸[내삼문]
측면 칸수 1.5칸[숭의당]|1칸[녹동사]|1칸[외삼문]|1칸[내삼문]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원.

[개설]

녹동서원(鹿洞書院)은 모하당(慕夏堂) 김충선(金忠善)[1571~1642]을 추모하기 위하여 1794년(정조 18)에 건립되었다. 김충선의 자는 선지(善之), 호는 모하당(慕夏堂)이다. 본래 일본인으로 성은 사(沙), 휘는 야가(也可)이다. 임진왜란 때 귀화하여 공을 세웠다. 선조로부터 사성(賜姓) 김해 김씨(金海金氏), 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아 사성 김해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거주하며 가훈 및 향약 등을 제정하였다. 저서로는 1798년(정조 22)에 간행한 『모하당집(慕夏堂集)』이 있다.

[위치]

녹동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길 218[우록리 585-1]에 있다. 대구에서 청도 방향으로 국도 30호선을 가다가, 녹문교 우측 우록길을 따라 약 2㎞ 이동하면 달성 한일 우호관과 녹동서원이 있다.

[변천]

1789년(정조 13) 대구 지역 유림들은 김충선을 배향하는 서원을 건립하고자 경상 감사에게 향장(鄕狀)을 올렸고, 1794년 서원을 준공하여 위폐를 봉안하게 되었다. 1789년 향장에 따르면 서원 건립은 김충선의 후손과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 유림들의 공의에 의한 것이었다. 이후 흥선 대원군 집권기 때인 1871년(고종 8) 훼철되었으나 1914년 중건되었다. 1972년 서원의 규모가 협소하다 하여 원래의 위치에서 100m 떨어진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여 증축하였다.

[형태]

녹동서원은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을 구분한 전학 후묘(前學後廟) 형태이나, 사당이 강당의 우측 배면에 자리잡아 병렬형 축(軸)을 이룬다. 배치는 외삼문인 향양문(向陽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강학당인 숭의당(崇義堂)이 자리하며, 우측 후면에 내삼문과 사당인 녹동사(鹿洞祀)가 있다. 향양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숭의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 규모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에 대청이 있고 왼쪽에 2통간 온돌방, 오른쪽에 1통간 온돌방이 있다. 내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녹동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현황]

녹동서원 주변에 김충선과 관련된 다양한 시설이 있다. 녹동서원을 중심으로 왼쪽에 충절관(忠節館), 오른쪽에 달성 한일 우호관이 있다. 2005년 발행된 『달성군 일반 동산 문화재 다량 소장처 실태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충절관에 『모하당집』과 『맹자 집주 대전(孟子集註大全)』, 각종 필사본 11종 12책, 임진왜란 당시 사용되었던 조총·칼·화살 등 19점, 1892년 김충선에게 내려진 교지(敎旨) 등이 보관되어 있었다. 서원 내부에는 녹동재기(鹿洞齋記), 상량문(上樑文) 등 6점 현판과 향양문 다락에 『모하당집』 79점의 책판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현판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물은 달성 한일 우호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녹동서원 약 500m 떨어진 뒷산에 김충선의 묘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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