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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0809
한자 金夏錫
영어공식명칭 Kim Haseok
이칭/별칭 몽득(夢得),졸재(拙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38년연표보기 - 김하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73년 - 김하석 생원시 급제
몰년 시기/일시 1687년연표보기 - 김하석 사망
출생지 현풍현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거주|이주지 현풍현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묘소|단소 김하석 묘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서흥
대표 관직|경력 광릉 참봉

[정의]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몽득(夢得), 호는 졸재(拙齋). 김굉필(金宏弼)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김천도 찰방(金泉道察訪)을 지낸 김대진(金大振)이고, 할아버지는 사맹(司猛)을 지낸 김확(金確)이다. 아버지는 헌릉 참봉(獻陵參奉)을 지낸 김원귀(金元龜)이며, 어머니는 우윤(右尹)을 지낸 박선영(朴善永)의 딸 공인(恭人) 밀양 박씨(密陽朴氏)와 봉사(奉事)를 지낸 강수인(姜壽仁)의 딸 진양 강씨(晉陽康氏)이다. 부인은 종사랑(從仕郞) 이준량(李俊良)의 딸 공인 완산 이씨(完山李氏)이다.

[활동 사항]

김하석(金夏錫)[1638~1687]은 문장(文章)과 필법(筆法)이 뛰어났다고 한다. 이현일(李玄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73년(현종 14) 생원시에 급제하였다. 장사랑(將仕郎)이 된 후 광릉 참봉(光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1677년(숙종 3) 아버지 김원귀가 세상을 떠난 후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 연구에만 힘썼다.

[학문과 저술]

2권 1책의 『경현속록 유보(景賢續錄遺補)』를 저술하였다. 『경현속록 유보』는 『경현록(景賢錄)』과 『경현속록(景賢續錄)』에 수록되지 않은 김굉필의 사적과 다른 문사(文士)들의 글들을 보완한 책이다.

[묘소]

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증손자인 김정제(金鼎濟)가 현달함에 따라 사복시 정(司僕寺正)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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