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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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禹東進 |
영어공식명칭 | Woo Dongji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우동진(禹東進)[?~?]은 경상북도 달성군 월배면 상인동[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서 태어났다. 1913년 음력 정월대보름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안일암에서 시회를 가장하여 결성된 재건 달성 친목회[조선 국권 회복단 중앙 총회]에 관계하였다. 달성군 월배면 상인동의 윤상태(尹相泰)와 우하교(禹夏敎)의 권유를 받고 달성 친목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6월 24일 대구 지방 법원 검사국에서 심문을 받았다. 일본인 검사들이 자신의 집에 있던 독립 선언서를 내보이며 질문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독립 선언서는 1919년 음력 3월 14일 대구 동문 시장(東門市場)에서 주운 것"이라고 말하였다.
우동진은 또한 유림단의 독립 청원 운동에 대해서도 윤상태와 우하교와의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1919년 2월과 3월 무렵 우하교와 윤상태가 다른 유생들과 협의하여 조선 독립의 청원서를 기초하고 곽종석(郭鍾錫)의 첨삭을 받아 김창숙(金昌淑)으로 하여금 중국 상하이로 가져가게 하고, 그것을 파리 강화 회의에 제출하는 활동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1919년 대구 지검으로부터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