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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거창 출신으로 추정하고 있는 신라 화랑. 삼국 시대 신라 진평왕(眞平王)[재위 579~632] 대의 거열랑(居烈郞)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감통(感通) 제7 ‘융천사(融天師) 혜성가(彗星歌) 진평왕대(眞平王代)’에 소개되어 있다. 이 이야기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제5 거열랑, 제6 실처랑(實處郎)[돌처랑(突處郞)이라고도 한다], 제7 보동랑(寶同郎) 등 세 화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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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거창 출신으로 추정하고 있는 신라의 군인. 거타지(居陀知)와 관련된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 제2 ‘진성 여대왕 거타지(眞聖女大王居陀知)’에 수록되어 있다. 이를 대략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라 제51대 진성 여왕[재위 887~897] 대에 왕의 막내 아들 아찬(阿湌) 양패(良貝)가 사신으로 당나라로 가게 되었다. 거타지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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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의 향토 문화재 보존, 향토지 편찬, 거창 박물관 설립에 기여한 의사이자 향토 문화인. 김태순(金泰淳)[1926~2008]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김태순은 1926년 9월 28일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서변리 284번지에서 태어났다. 1939년 3월 거창 심상 소학교, 1943년 3월 진주 공립 중학교, 1949년 6월 세브란스 의과 대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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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에 거창군 인민 위원장을 지낸 독립 운동가. 일제 강점기에는 3·1 운동을 벌이고, 신간회와 농민 조합에서 활동하였고, 해방 후에는 1945년부터 1946년까지 거창군 인민 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신학업(申學業)[1901~1975]은 1901년 12월 16일 경상남도 울산군 언양면 서부리 15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7년 언양 공립 보통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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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거창 지역에서 활동한 유의(儒醫). 유이태(劉以泰)[1652~1715]는 향촌 사족(士族)의 후손으로 숙종 때 어의를 지냈다. 유이태는 어려서부터 문학과 의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마진 치료에 뜻을 두어 『마진편(麻疹篇)』을 저술하기도 했다. 이외 일상의 구급에 필요한 단방(單方)과 자신의 경험방을 수집하여 『실험 단방(實驗單方)』과 『인서문견록(麟西聞見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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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에서 선구적인 기독교 전인 교육을 실천한 교육자. 전영창(全永昌)[1917~1976]은 신사 참배 반대 운동으로 투옥된 적이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유신 체제에 반대한 교육자이다. 전영창은 1917년 12월 26일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 1594번지에서 태어나 안성 초등학교와 전주 신흥 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3월 신흥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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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의 청년·교육·언론 운동가로 해방 직후 초대 민선 거창 군수. 주남재(朱南宰)[1878~1958]는 1878년 5월 6일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에서 태어났다. 3·1 운동 이후 거창으로 이주하여 조선 일보 거창 지국의 기자, 지국장을 지내면서 활발한 지역 운동을 전개했다. 동시에 거창읍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인이었다. 1920년대 이후에는 거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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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시기 거창의 농촌 계몽과 향토 문화재 보존에 기여한 선각자. 최남식(崔南植)[1920~2007]은 1920년 1월 1일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거창에 정착하였다. 양정 고등학교 재학 중 교사 김교신의 영향을 받아 재학 중 브나로드 운동에 참가했고,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의 정신에 따라 농촌 계몽 운동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다.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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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에서 청년 운동, 신간회 운동을 벌였던 해방 직후 거창 경찰서장. 황창석(黃昌錫)[?~?]은 거창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웅변에 능한 농촌 계몽 사상가로서 거창 청년 운동의 중심 인물로 부각되었다. 1927년 4월 30일 오후 9시 거창 청년 회관에서 개최된 동아 일보 사옥 낙성 기념 동아 일보 거창 지국 현상 웅변 대회에서 “민중아, 농촌으로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