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5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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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坡平 尹氏 |
영어공식명칭 | Papyeong Yu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어윤동 |
입향 시기/일시 | 1500년 전후 - 파평 윤씨, 살목 입향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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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34년 - 파평 윤씨 거창 입향조 윤할 출생 |
입향 시기/일시 | 1592년 - 파평 윤씨 거창 입향 추정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607년 7월 6일 - 파평 윤씨 거창 입향조 윤할 사망 |
본관 | 파평(坡平)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
입향지 | 파평 윤씨 입향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살목 마을 |
입향지 | 파평 윤씨 입향지 -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 영승 마을 |
세거|집성지 | 파평 윤씨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살목 마을 |
세거|집성지 | 파평 윤씨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안흥 마을 |
세거|집성지 | 파평 윤씨 집성지 -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영승리 |
묘소|세장지 | 파평 윤씨 세장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살목 마을 주변 산 |
성씨 시조 | 윤신달(尹莘達) |
입향 시조 | 윤자선(尹孜善)[남하 살목]|윤할(尹劼)[마리 영승] |
[정의]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자선과 윤할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거창군에 세거하는 성씨.
[개설]
파평 윤씨(坡平尹氏)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문 거족이다. 893년 신라 진흥왕 때에 파주 파평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용연(龍淵)에서 옥함(玉函)이 물 위에 떠올랐는데 그 옥함 안에서 시조 윤신달(尹莘達)이 나왔다 하여 893년을 성씨의 원년으로 삼는다. 파평은 오늘의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이다.
거창 입향조인 16세 윤자선(尹孜善)은 단성 현감을 역임하고 합천 묘산면 화양동에 살다가 거창에 입향하였으며, 그 후로 자손이 흥성하고 현달한 자가 많아 거창의 대표적인 명문가로 인정을 받았다.
[연원]
시조 윤신달의 현손인 5세 윤관(尹瓘)은 파평 윤씨의 중흥조이다. 윤관은 문과에 급제한 문신이자 장수로서도 명성을 떨쳤는데, 여진족을 몰아내고 북진 정책을 완수한 공으로 파평백(坡平伯)에 봉해져서 후손들이 파평을 본관으로 삼았다.
입향조인 윤자선의 할아버지인 14세 윤장(尹將)은 문과에 급제하여 사재판서(司宰判書)를 역임했는데, 당질서(堂姪婿)[사촌 형제의 사위]인 우의정 김종서(金宗瑞)가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희생되자 화를 피해 합천 묘산면 화양동에 은거했으며, 손자인 16세 윤자선이 1500년경에 거창 남하 양항의 상촌으로 입향하여 그 자손들이 남하면 살목[지금의 남하면 양항리 살목 마을]과 안흥[지금의 남하면 둔마리 안흥 마을]에 세거하였다.
20세 윤경남(尹景男)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신록에 실렸고, 24세 윤상거(尹商擧)는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에 의병을 일으켰으며, 29세 윤봉의(尹鳳儀)는 한말에 순절하였다. 30세 윤충하(尹忠夏)·윤인하(尹寅夏)·윤재하(尹在夏)는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31세 윤철수(尹哲洙)·윤병수(尹秉洙)는 애국 운동과 육영 사업의 선구자이다. 26세 윤동야(尹東野)와 30세 윤주하(尹冑夏)는 큰 선비로 방대한 문집을 남겼다.
[입향 경위]
파평 윤씨 14세 윤장은 1453년 계유정난의 화를 피하여 합천 묘산면 화양동으로 은거하였다. 16세 윤자선 대에 1500년경에 거창 남하 양항리의 상촌에 자리 잡아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마리 영승[지금의 마리면 영승리]의 입향조는 21세 윤할(尹劼)[1534~1607]인데, 서울에서 살다가 영승으로 입향했다.
[현황]
거창군 내의 파평 윤씨는 356가구 994명으로 집계되었으며, 대표적인 집성촌은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살목과 둔마리 안흥, 마리면 영승이다.
[관련 유적]
〈양항리 유적〉
o 고 현감 윤공 화곡지단(故縣監尹公華谷之壇): 입향조인 16세 윤자선은 생원으로 단성 현감을 역임했기에 그를 추모하여 1820년에 세웠다.
o 심소정(心蘇亭): 입향조인 16세 윤자선을 추모하여 1757년에 후손과 외손들이 협력해 중수하였으며,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8호로 지정되었다. 거창 초등학교의 시발처이며, 유림의 파리 장서 운동 산실로 유서 깊은 곳이다.
o 영호 선생 윤공 신도비(瀯湖先生尹公神道碑):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자헌대부 대사헌과 성균관 좨주에 증직된 20세 윤경남을 기려서 세웠으며, 비문은 곽종석(郭鍾錫)이 지었다.
o 호군공 종택(護軍公宗宅):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326호이며, 입향조가 지었고 영호 선생 윤경남의 생가이다.
o 남전 서당(藍田書堂):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킨 20세 윤경남과 김면(金沔), 문위(文緯)를 봉안하여 채례(菜禮)를 올리는 곳이다.
o 심산재지(心山齋址): 파리 장서의 유림 대표 137명 중 한 명인 30세 심산(心山) 윤인하를 기려 후손들이 1940년에 세웠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양항리 이외의 유적〉
o 흥의재(興義齋):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안흥에 있으며, 1912년에 세워서 마을 서당으로 쓰다가 29세 윤봉의(尹鳳儀)에게 한문을 가르치도록 기증하였다.
o 윤 의사 기적비(尹義士紀蹟碑): 거창군 남하면 둔마리 안흥의 흥의재(興義齋) 안에 있으며, 1919년 순절한 29세 윤봉의 의사를 기려서 세웠다.
o 돌정지[石亭只]: 안흥 서쪽 길목의 개울가를 말하는데, 정온(鄭蘊)과 20세 윤경남이 만난 곳이라고 전한다.
o 서담재(西潭齋): 거창군 마리면 영승 마을에 있으며, 21세 충의위 윤할이 가르쳤던 곳이다. 윤할의 아들 윤응석(尹應錫)을 기려서 1575년에 세웠다.
o 남호재(南湖齋): 거창군 마리면 영승 마을에 있으며,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22세 윤응치(尹應恥)를 기려서 1959년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