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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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卞璧 |
영어공식명칭 | Byun Byeok |
이칭/별칭 | 헌지(獻之),구산(龜山)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483년 - 변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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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07년 - 변벽 생원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19년 - 변벽 현량과 천거 |
몰년 시기/일시 | 1528년 - 변벽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06년 - 변벽 양천 서원 배향 |
추모 시기/일시 | 1767년 - 변벽 병암 서원 추향 |
출생지 | 변벽 출생지 -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야로리 |
거주|이주지 | 변벽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동변리 |
수학|강학지 | 봉황대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도평리 |
외가|처가 | 변벽 외가 - 경상남도 거창군 |
묘소|단소 | 변벽 묘소 -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도평리 |
사당|배향지 | 병암 서원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사병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밀양(密陽) |
대표 관직|경력 | 생원 |
[정의]
조선 전기 거창에 살았던 학자.
[가계]
변벽(卞璧)[1483~1528]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헌지(獻之), 호(號)는 구산(龜山)이다. 변중량(卞仲良)의 5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판사재 감사(判司宰監事)를 지낸 변을명(卞乙明)이며, 할아버지는 변효생(卞孝生)이다. 아버지는 충순위(忠順衛) 변신보(卞申甫), 어머니는 만호(萬戶)를 지낸 정의종(鄭義宗)의 딸 동래 정씨(東萊鄭氏)이다. 변벽의 부인은 첨정(僉正)을 지낸 문극정(文克貞)의 딸 숙인(淑人) 남평 문씨(南平文氏)와 이수곤(李秀昆)의 딸 숙인 연안 이씨(延安李氏)다.
[활동 사항]
변벽은 1483년(성종 14) 경상도 합천군(陜川郡) 야로현(冶爐縣) 돈평리(敦平里)[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야로리]에서 출생하였다. 세 살 때 아버지 변신보가 세상을 떠나자 거창현의 외가에서 성장하였으며, 이로 인해 변벽은 거창현 모곡(茅谷) 구산(龜山)[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동변리]에 거주하게 된다.
1507년(중종 2) 어머니 동래 정씨의 권유로 생원시에 응시해 급제하였으나, 과거에 뜻을 두지는 않았다. 1514년(중종 9) 고향 인근에 봉황대(鳳凰臺)[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도평리 소재]를 짓고 여러 학자들과 소요(逍遙)하였으며, 1518년(중종 13)에는 양성재(養性齋)를 지어 학문 연구의 장소로 삼았다. 변벽은 주로 같은 거창현 출신의 형사보(邢士保)·유자방(柳子房) 등의 인사들과 교유하며, 학자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1518년 변벽은 경상도 관찰사(慶尙道 觀察使)였던 김안국(金安國)에 의해 형사철(邢士哲)·형사보 형제와 함께 천거되었다. 이때 김안국은 “편모(偏母)를 봉양하면서 몸소 맛난 음식을 장만하여 평생을 거르지 않았다.”라며 변벽의 효성을 높게 평가하였다.
1519년(중종 14) 당시 사림파의 영수 조광조(趙光祖)의 청으로 실시된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변벽은 1520년(중종 15) 경상도 선산 도호부(善山都護府)에서 찾아온 김식(金湜)을 봉황대에서 만나게 된다. 김식은 1519년에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선산 도호부에 유배된 상태였는데, 화를 피해 거창현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김식은 변벽과 이별한 후 거창현에서 자결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변벽은 즉시 자결 장소로 찾아가, 김식의 절명시(絶命詩)와 상소문의 초고를 수습하였다. 이후 학문 연구에만 주력하였는데, 1523년(중종 18)에는 고향 마을 북쪽에 둔세정(遁世亭)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는 장소로 삼았다.
[학문과 저술]
변벽의 문집으로 1책의 『구산집(龜山集)』이 전한다.
[묘소]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도평리의 봉황대 서쪽에 변벽의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1582년(선조 15) 사림들이 변벽을 기리는 서원 건립을 의논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1706년(숙종 33) 건립된 양천 서원(陽川書院)에 배향되었다. 양천 서원은 1766년(영조 42)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사병리에 있는 병암(屛巖)으로 옮겨져, 병암 서원(屛巖書院)으로 새롭게 건립되었다. 변벽은 1767년(영조 43) 병암 서원에 추향(追享)되었는데, 이 서원에는 변중량(卞仲良)·변계량(卞季良)이 함께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