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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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繼俊 |
이칭/별칭 | 자영(子英),쌍청(雙淸),쌍청당(雙淸堂)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채광수 |
출생 시기/일시 | 1490년 - 이계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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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22년 - 이계준 생원시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558년 - 이계준 사망 |
출생지 | 이계준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
거주|이주지 | 이계준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 |
사당|배향지 | 용천사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연안(延安) |
[정의]
조선 전기 거창에서 활동한 문인.
[가계]
이계준(李繼俊)[1490~1558]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자영(子英), 호는 쌍청당(雙淸堂)이다. 할아버지는 좌리공신(佐理功臣) 연안군(延原君) 이숭원(李崇元)이고, 아버지는 현감 이구령(李九齡)이다. 어머니는 첨절제사(僉節制史) 한숙신(韓淑臣)의 딸이다. 부인은 김신흠(金愼欽)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계준은 1490년(성종 21)에 태어났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1518년(중종 13)에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金安國)이 이계준을 천거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지례(知禮) 사는 사람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마 지례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거창군사』에는 중종 기묘사화(己卯士禍) 뒤에 지례에서 거창군 웅양면(熊陽面) 동호리(東湖里)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김안국의 천거 상소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을 여막(廬幕)에서 줄곧 시묘(侍墓)하였으며, 형제간에 우애가 있고 향당(鄕黨)에서 처신을 삼가며, 학문을 좋아하여 게을리 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계준은 1522년(중종 17)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이후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만년에는 과거를 그만두고 산중에서 지냈다고 한다. 학문이 뛰어나서 세인의 모범이 되었다.
[상훈과 추모]
이계준은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에 있는 용천사(龍泉祠)에 형사보(刑士保)·유자방(柳子芳)·전팔고(全八顧)·전팔급(全八及)·서숙(徐䎘)과 같이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