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구로공단이 있던 곳. 대한민국 수출의 10%를 담당했던 산업 1번지. 수많은 여공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던 곳. 바로 가리봉동이다.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화목한 가정에서 평범한 유년 생활을 보내고~’로 시작하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와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을 하고, 좁은 방에서 언니·동생과 부대끼며 살아야 했으나, 어찌 보면 평범함과는 대부분 거리가 있는 인생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성공해서 좋은 집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 보겠다는 꿈만큼은 어느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았을 터였다.

[문학 속에 비춰진 가리봉동]

이른바 ‘구로공단’으로 알려진 ‘한국수출산업공단’은 한때 11만 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2010년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의 하루 유동 인구가 1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당시의 인구 밀도를 짐작하게 한다.

어찌됐든 이런저런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 바로 가리봉동이었다. 사연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많은 예술 작품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1984년 시인 박노해는 시집 『노동의 새벽』에서 「가리봉시장」이란 시를 썼다.

양귀자는 1978년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신경숙은 1995년 『외딴방』에서 가리봉동을 등장시켰다.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가리봉동]

최근의 영화에서도 가리봉동은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1999년 개봉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서는 20년 만에 만난 가리봉동 친구들의 모임이 영화의 시작으로 설경구와 문소리가 만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2000년 작품인 「눈물」에서는 비행 청소년들의 일상을 그리면서 가리봉동 벌집의 생활을 보여 주고 있다. 이밖에도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 1994년 「장밋빛 인생」, 1989년 「구로아리랑」 등 가리봉동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많이 있다.

영화에 등장했던 건물들 역시 지금도 대부분 남아 있다. 영화 「초록 물고기」에서 고물상으로 나오는 장소는 지금의 가리봉시장 한복판에 고물상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영화 「나쁜 영화」에 나오는 탈선한 10대들이 머무는 방 역시 가리봉동에 그대로 있다. 지금도 벌집으로 세를 주고 있다.

[영화 같은 인생이 모티프가 되다]

가리봉을 배경으로 한 예술 작품이 많은 이유를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물어 봤다. 1988년부터 가리봉시장에서 빵집과 횟집을 해 온 이완기[1952년생] 씨는 “가리봉 사람들이 이야기꺼리가 많지요. 여기서 갖은 고생 다해 가며 살았지요. 대한민국이 구로공단 아니었으면 어디서 수출을 그만큼 했을 거예요.”라며 사연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 동네가 원래 논, 밭이었는데 1968년 박람회가 열리면서 완전히 바뀌게 됐대요. 저는 그 이후에 들어와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1990년대 초반까지 가리봉시장은 명동 거리 같았어요.”라고 말했다.

이완기 씨가 얘기한 동네 사람들 가운데는 가리봉동에 건물을 여러 채 갖고 있던 부자도 있었고, 시골에서 올라와 1998년 IMF 구제 금융 시기에 집 사고 재산을 늘려 지금은 편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주말이면 시장 길에 몰려나오던 여공들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 가리봉동을 다시 찾아와 깜짝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사연들이 모여 있으니 영화나 소설의 배경으로 가리봉동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정보제공]

• •  이완기(남, 1952년생, 구로동 가리봉동 주민, 가리봉상가대책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