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9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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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澤林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 |
집필자 | 이근호 |
본관 | 평택 임씨 관적지 - 경기도 평택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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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평택 임씨 집성지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동교리 |
성씨 시조 | 임팔급(林八及) |
입향 시조 | 임득의(林得義) |
[정의]
임팔급을 시조로 하고 임득의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포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평택 임씨(平澤林氏)의 시조 임팔급(林八及)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중국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있다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고려 말 세자 전객령 겸 연희궁 부사를 지낸 임세춘(林世春)을 일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는 전객령계와, 역시 고려 말에 삼중대광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이 된 임언수(林彦脩)를 일세조로 하는 충정공계로 나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입향 경위]
평택 임씨가 포천 지역에 입향한 것은 16세기 후반 이후로, 1596년(선조 29)에 있었던 이몽학(李夢鶴)의 반란 진압에 공을 세우고 1604년에 청난공신(淸難功臣) 3등에 녹훈된 임득의(林得義)가 축석령 일대를 사패지로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현황]
1934년에 간행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는 포천의 소흘면 이동교리에 17가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이후 1953년에 간행된 『경기 도지』에서는 20가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포천 지역의 평택 임씨는 임득의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포천 화수회를 조직해서 활동 중이며, 대동보와는 별도로 포천 문중 세보를 발간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