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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238
한자 馬山南城洞漕倉-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 142-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헌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60년연표보기 - 마산 남성동 조창 건립
소재지 마산 남성동 조창 터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 142-3 지도보기
성격 조창 터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에 있는 조선 시대 창원부에 속한 조창 터.

[개설]

마산 남성동 조창 터는 조선 시대인 1760년(영조 36)에 경상도 관찰사 조엄(趙曮)의 계에 따라 대동미의 징수를 위해 창원부에 둔 조창의 터이다.

[변천]

『경상도 읍지』 「창원부 읍지」 창고 관련 기록에 따르면 “해창은 부의 서쪽 20리에 있다. 조창해창 곁에 있는데 경진년(1760년)에 처음 세웠다.”고 되어 있다. 『교남지』 마산부 연혁에는 “영조 36년(1760년)에 관찰사 조엄이 계를 올려 조창을 설치하고 마산포라 불렀다.”고 나온다. 이에 따라 조창이 설치된 시기가 1760년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마산창에 대해서는 『세종 실록』 지리지에 “도내의 공부(貢賦)는 각각 가까운 곳에 따라, 김해의 불암창(佛巖倉), 창원의 마산창(馬山倉), 사천의 통양창(通洋倉) 등으로 나누어 수송하여 바다를 따라 전라도·충청도의 해로를 지나서 서울에 이르는데, 수로가 험악하여 매양 파선하여 침몰되므로, 태종 3년 갑신에 조선(漕船)을 폐하고 각각 농민들로 하여금 충청도의 충주 경원창(慶源倉)으로 바로 바치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서는 합포해창, 마산포에 좌조창(左漕倉)을 표시하였는데, 이곳 마산포에 둔 창을 좌조창이라 한 것은 사천의 가산창에 그 위치를 견주어 그리 부른 것이다.

[위치]

『경상도 읍지』에서 해창이 부의 서쪽 20리에 있고 조창은 그 곁에 있다고 한 것을 보아 조창마산포 근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에 실린 「창원부 지지도」에는 이산[현 반월산]과 오산[현 용마산] 남쪽 두각지에 해창을 표시하고, 그 서쪽 만입부에 전선소를 명기하였다. 조창은 내만의 서쪽에 표시하였는데, 전선소가 자리한 곳은 지금의 어시장 일원이고, 조창의 위치는 그 배후의 남성동 일원으로 비정된다.

[현황]

산호동에서 옮겨간 옛 조창이 있던 곳은 지금의 남성동 파출소 일원이다. 마산포의 개항 이래 진전된 도시화 과정에서 옛 터는 사라졌지만 ‘창동(倉洞)’이란 이름에 조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조창의 본당인 유정당(惟正堂)이 있던 곳은 지금의 제일 은행 자리로, 그 남쪽으로는 해안이 펼쳐져 있었다.

[의의와 평가]

지금은 ‘창동’이란 지명으로만 당시의 조창을 헤아릴 뿐이지만 그 경계에서 당시의 해안선을 그려볼 수 있으며, 조선 시대 조세 체제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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