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사회운동가 아버지는 웅천군의 마지막 군수였던 김재형[1864~1948]이었으며, 남편은 웅동면에 살았던 배익우이다. 조봉암의 부인이었던 김조이는 김남이의 조카이다. 일본에 유학하고 와서 1928년 ‘웅천 여자 청년회’를 창립하여 대표자로 활동했다. 1930년 혼인하면서 사회활동을 중단하였다....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전개된 1960년 3·15 의거 과정에서 희생된 민주열사 이승만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일어났던 1960년 3·15의거 과정에서 경찰이 쏜 최류탄에 의해 희생되었다. 시체가 4월 11일 마산만 중앙 부두에서 떠오르자 제2차 의거가 일어났고,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김태종(金泰鐘)이며, 아버지 김재계(金...
창원시 마산 출신의 사회 운동가·노동 운동가. 노현섭(盧玄燮)[1920~1991]은 일본 중앙대 법과를 졸업하였다. 8·15 해방 직후 마산 보통 상업 학교[현 용마 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6·25 전쟁 이후 3개 부두 노조를 통합한 단일 지역 노조인 대한 노총 자유 연맹 마산 부두 노조를 결성, 본격적으로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다. 1954년 마산 자...
경상남도 창원시를 중심으로 활동한 노동운동가. 박창수는 1990년 7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에 당선되어 활동하였으며, 연대를 위한 대기업 노동조합회의 의장으로도 활동하였다. 거제의 대우조선 전면 파업(1991년 2월 8일)에 대한 공동 대응을 모색하기 위하여 1991년 2월 9일~1991년 2월 10일에 열린 연대를 위한 대기업노동조합회의의 간부수련회에 참석한...
일제강점기 창원 출신의 사회주의운동가. 안준은 1919년 12월 5일 남면청년회를 결성하여, 3·1운동과 관련하여 옥고를 치른 설관수·송석민 등이 1920년 6월에 결성한 창원청년단과 함께 초기 창원 지역의 청년운동을 이끌었다. 1920년 12월 1일 조선청년회연합회가 서울에서 출범하자 경상남도 지역 청년단체 30개가 여기 포함되었는데, 안준도 여기에 참여하였다. 또 사...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활동했던 노동운동가. 임종호는 1964년 12월 14일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태어나 1983년 창원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전인 1982년 10월 동양기계[현 세일중공업]에 입사하였다. 임종호는 입사 후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 앞장섰으며, 1987년부터 1988년까지 정당방위대에서 활동하였다. 1989년 5월 창원대로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