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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바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1658
한자 兄弟 -
영어공식명칭 Brothers Rocks
이칭/별칭 「형제암」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다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4년 - 「형제바위」『대구의 뿌리 달성』에 수록
관련 지명 형제바위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
성격 설화|전설|암석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박충후|큰딸|작은딸|이종택|왜병
모티프 유형 정절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에서 형제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형제바위」임진왜란 때에 박충후(朴忠後)[1552~1611]의 두 딸이 정절을 지키려고 바위에서 뛰어내리자 바위가 둘로 갈라져서 마을 사람들이 이를 '형제바위'로 부르게 되었다는 암석 유래 전설이다. 이를 「형제암」이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2014년 달성 문화 재단과 달성 군지 간행 위원회에서 간행한 『대구의 뿌리 달성』의 하빈면 전설 항목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시대 선조 연간에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지낸 박충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그가 달성을 지키는 장수로 있을 당시 큰딸이 과년하여 하빈의 이종택에게 시집을 보내게 되었다. 박충후의 작은딸이 언니의 시댁에 놀러 가게 되었는데, 그때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임진년 5월 18일 왜병이 쳐들어와서 하빈을 포위하게 된다. 작은딸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언니와 함께 하빈에 있게 된다. 박충후가 이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가 두 딸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박충후의 군사가 이르기도 전에 왜병이 마을로 쳐들어와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다. 박충후의 두 딸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구봉산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그런데 왜병의 한 무리가 구봉산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마을 사람들을 덮쳐 무참히 죽이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두 딸은 이종택과도 헤어져 낙동강 쪽으로 쫓겨 달아났다. 낙동강가에 이르니 까마득한 절벽 아래 푸른 물결만 넘실거릴 뿐 배 한 척 보이지 않았고, 뒤에는 아귀 같은 왜병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두 딸은 왜병에게 잡혀 욕을 당하느니 죽어서 정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곁에 있던 바위 위로 올라가서 강으로 뛰어내렸다. 왜병이 당도해 보니 두 딸은 이미 강물에 몸을 던져 죽고 난 후였다. 이때 하늘이 두 딸의 정절에 감동하였던지, 바위가 큰소리를 내며 둘로 갈라졌다. 두 딸의 죽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이 두 딸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그 바위를 '형제바위', '형제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형제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정절'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능욕으로 인해 많은 부녀자들이 희생되었으니, 「형제바위」에는 적병을 피해 낙동강에 투신하는 화를 당한 박충후의 두 딸의 한을 담고 있다. 전승 집단은 「형제바위」의 구술을 통해 '정절'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부녀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들의 한을 잊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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