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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과 호국ㆍ보훈의 애국심 낙동강 방어선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진을 막아내기 위해 낙동강을 따라 설정한 방어선을 의미한다. 이 방어선은 동서 80km, 남북 160km로 서북쪽으로는 경북 왜관을 기점으로 하여 동해안의 포항에 이른다. 한편 서쪽은 낙동강 본류를 따라 진주 남강과의 합류지점인 창녕군 남지읍에 이르고, 다시 함안 진동리를 거쳐 진해만에 이른다. 국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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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많고 다리 많은 대촌, 다리목마을 교항리(橋項里)는 본래 다리목마을인 교항 1리와 법화 마을인 교항 2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최근에는 이들 마을 사이에 뉴제림 타운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교항 3리가 새로 생겨났다. 다리목마을 일대는 본래 대구부(大邱府) 법화면(法花面) 지역이다. 고려 현종(1016) 때에 지금의 성주군인 경산부(京山府)가 대단련사(大團鍊使)의 중심지역이 됨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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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병들이 부자들로 변한 마가들 다리목 마을은 현재 제방 공사가 이루어져 마가들을 사이에 두고 낙동강과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오래 전에는 낙동강물이 마을 가까이로 굽이쳐 흘렀다. 마을의 여러 지명과 지형적 특성들은 이러한 사실을 말해준다. “옛날에는 낙동강이 우리 동네 쪽으로 붙어 있었어요. 들이라는 게 옛날에는 모두 강(江) 밖으로 나가 있었어요. 들의 호칭이 많이 있거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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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비까지 세워준 농민들의 숙원 해결사 김경순 면장 다리목 마을은 ‘강과 산과 들의 마을’이다. 이 중에서도 들과 강은 농민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주요 생활 자원이자 생태 환경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 물은 마가들을 적셔주는 다리목 마을의 젓줄이다. 제대로 된 농지를 만들어 강물을 대고 여기에 농민들의 땀이 곁들여져야 비로소 수확의 풍요가 결실을 맺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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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학 전통과 금계초등학교 유치 운동 농촌에서 교육시설은 보통 인구가 밀집한 면 소재지 이상의 행정 중심지역에 들어선다. 하지만 다리목 마을의 대구 금계초등학교는 행정 중심지가 아닌 일반 자연 마을에 설립되었다. 이는 300호가 넘는 대촌(大村)이라는 점 외에도 200여 년 전부터 고을의 서당 교육이 이 마을에서 지속적으로 실천되어온 역사적 전통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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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초등학교를 졸업한 마을 인재들 금계초등학교의 교명은 맞은편에 있는 금계산(金鷄山)에서 따온 것으로 1966년 정식으로 개교하였으나, 1962년부터 4년 동안은 옥포 초등학교 금계 분교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졸업생들에게 금계초등학교는 ‘두 가지의 땀’을 흘린 곳이다. 하나는 육체적인 땀이다. 1962-1965년까지 금계 분교 시절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아프리카의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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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제방공사와 부농의 꿈 ‘옥공 제방(玉工 堤防)’, ‘논공제(論工堤)’라고도 일컫는 낙동강 호애 제방(洛東江 湖涯 堤防)은 옥포읍 다리목 마을에서 논공면 금포리(金圃里)까지의 낙동강 제방이다. 1960년대 제방공사로 일대의 들판이 농토로서의 제 역할을 하기 전까지는 낙동강이 자주 범람하여 3년 걸러 1년만 배곯지 않고 먹을 수 있어도 퍽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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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복지를 선도하는 김안순 노인회 회장 다리목 마을은 대촌(大村)답게 노인회 규모도 으뜸이이어서 회원만도 208명에 이른다. 마을 노인들의 복지를 선도하는 김안순 회장은 다리목 마을 노인회를 2년째 이끌고 있다. 노인들은 서로 존중하고 화합하며 삶의 지혜를 전승하는 일에도 솔선수범한다. 김안순 회장은 1940년 8월 24일 다리목 마을에서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나 군 복무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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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목마을 토박이 부녀회장 김숙이 1948년생인 김숙이는 3살 때 6.25 전쟁을 맞았다. 국군과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1950년 8월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 인민군을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다리목마을은 낙동강 기슭에 위치하여 피아 공방전의 범위에 포함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 의하면, 한때는 인민군이 도강하여 마을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아군이 이를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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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와 선녀 이야기를 품은 금계산 금계산(金鷄山)은 다리목 마을 동쪽에 위치한 해발 487.3m의 뒷산으로 앞쪽의 낙동강과 더불어 배산 임수(背山 臨水)의 형국을 이룬다. 금계산은 마주하는 대방산(大方山)과 함께 비슬산으로 이어지며, 풍부한 삼림과 수자원을 지니고 있다. 금계산과 대방산 사이의 계곡은 ‘선녀곡’으로 일컬어지는데, 여기서 발원하는 교항천(橋項川)은 선녀마을, 법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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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들수리조합의 산증인 김선린 다리목 마을 마가들은 총 600정보에 이를 정도로 광활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웃하는 신당과 강림, 논공 등의 마을과 공유하지만, 다리목 마을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생계의 터전으로 통한다. 제방 공사와 경지 정리가 되기 전에는 홍수 시의 낙동강 범람과 한발의 경우 농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일부 땅에서 밭작물을 재배하는 정도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곳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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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풍수 전문가 김외상 풍수(風水)는 ‘풍수지리(風水地理)’라고도 일컫는데, 여기서 풍(風)은 기후와 풍토를 지칭하며, 수(水)는 물과 관계된 모든 것을 가리킨다. 즉 풍수는 음양론(陰陽論)과 오행설(五行說)을 기반으로 땅에 관한 이치, 즉 지리(地理)를 체계화한 전통적 사유체계이다. 풍수의 주된 목적은 일정한 경로를 따라 땅 속을 돌아다니는 생기(生氣)를 사람이 접함으로써 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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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문화 공간이자 대구시민의 쉼터, 이팝나무 숲 다리목 마을의 이팝나무 숲은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957, 958, 968번지에 조성되어 있는 귀중한 삼림 유전자원이자 향토자원이다. 예로부터 이팝나무 꽃이 만개하는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하여 우리 선조들이 귀하게 여겨 왔다. 달성군에서는 1991년 7월 24일 이팝나무 군락지 10,000㎡에 대해 삼림 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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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 전설과 마을 샘 다리목 마을의 입지적 특성은 다음 2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주변보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하며 마을 지형이 배의 형상을 닮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금계산(金鷄山)과 대방산(大方山) 계곡에서 떠내려 온 흙과 낙동강물이 운반해온 토사가 충적된 토양 위에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구전되어 오는 이른바 ‘배(舟)설 전설’은 이와 같은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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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자의 리더십과 마을 근대화 달성군 옥포읍의 재적자 명부를 떼보면 다리목 마을 출신자가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유는 교육열이 높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리목 마을 사람들은 대구를 비롯하여 서울, 부산 등 대도시로도 많이 나가있다. 다리목 마을에서는 광복 전후 시기부터 민선 면장과 농협장을 비롯하여 면 의원, 교육위원, 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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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고향 찾아 되돌아온 김덕공 1932년생인 김덕공은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할아버지가 식솔을 데리고 강원도 철원군 어운면 홍원리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생명을 부지하기 힘든 시절, 할아버지는 오로지 먹고 살 길을 찾아 다리목 마을로부터 생면부지의 이곳에 정착했다. 당시는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휴전선으로부터 60~70리나 이북으로 들어간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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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헌 처사 유적 보존회 김선태 회장 야헌(野軒) 김성노(金成魯) 선생은 사후 제자들이 유림계를 조직하여 매년 추모 향사를 지내올 정도로 다리목 마을의 큰 선비였다. 시대 변화에 밀려 비록 유림계는 와해되었을지라도, 6.25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그런 전통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후 종손(宗孫)의 출향과 함께 선생의 관련 행적들이 유실됨에 따라 학덕이 빛을 잃어가는 듯했다. 아울러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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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헌 김성노 선생의 학덕과 유림계 향사 유학자이자 선비로 이름난 김성노(金成魯, 1769-1831) 선생은 다리목 마을 입향조 김유원(金有元) 공의 10세손이다. 조선시대 영조 때의 사람으로 일찍 학문에 뜻을 두고 향시에도 세 번씩이나 합격하였다. 하지만 난세의 정치무대에 나아가기보다는 다리목 마을 금계산(金鷄山) 자락에다 ‘낙교재(洛橋齋)’라는 서당을 지어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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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지 축조와 유정지계 유정지(柳亭池)는 다리목 마을의 간선 도로격인 5호선 지방도 아래에 위치한 저수지 명칭이다. 버드나무 ‘유(柳)’ 자의 유정지 명칭은 예전 못 가에 버드나무가 많이 서식한 데서 유래한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버드나무 ‘유’ 자와 못 ‘지’ 자를 한글로 소리 내어 일컫는 ‘버정못’ 명칭이 더 익숙하다. 유정지와 연해 있는 ‘버정등’ 동산 명칭도 이로부터 붙여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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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 숲 보존 노력과 애림 정신 다리목 마을의 이팝나무 숲은 마을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할 정도로 오래된다. 원로들은 마을이 조성되던 무렵부터 이팝나무 숲이 조성되었다고 말한다. ‘동네 방패’라고 일컫는 말처럼, 이팝나무 숲은 마을을 지켜주는 보호림으로서의 상징성을 지닌다. 이는 ‘이팝나무 숲 너머의 곳’을 의미하는 ‘간넘’ 지명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서 ‘간(干)’은 방패를 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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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사회 지역 사학의 요람, 낙교재 ‘낙교서당(洛橋書堂)’으로도 일컫는 낙교재(洛橋齋)는 야헌(野軒) 김성노(金成魯, 1769-1831) 선생이 19세기 초에 세운 일종의 사립학교였다. 낙교(洛橋)는 ‘낙동강 교항(다리목) 마을’이라는 의미로 선생이 태어나서 거주해온 다리목 마을의 서당임을 가리킨다. 선생은 고려조 관직이 정2품 정장사(正章事)였던 오산군(鰲山君)에 책봉된 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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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 농사로 대를 이은 조후제 작목 반장 다리목 마을 토박이 조후제(54세)는 마가들 제7농로에서 부인 박영숙(48세)과 함께 참외를 생산하는 ‘오병이어(五餠二魚)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농장 명칭은 기독교 신자인 이들 부부가 손수 지은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떡 다섯 조각과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의 배고픈 이들을 구제했다는 성경 이야기로부터 유래한다. 최선을 다해 품질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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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 농사로 부농의 꿈을 이룬 김양순ㆍ안효선 부부 참외 시설 재배로 이름난 교항리 다리목 마을에는 예전부터 부부 중심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농사철이 되면 이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함께 다니면서 일하고 농사 기술도 공유한다. 특히 세심한 관찰과 자잘한 돌봄이 필요한 참외 농사에서는 여성들의 안목과 손질이 절대적이다. 보물 덩어리 교항 참외 ‘황후의 과실’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는 더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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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 농사로 신지식 농업인상 1호 수상자가 된 김영호 김영호는 1948년 다리목 마을에서 3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도 다른 가정과 마찬가지로 장남으로서 1962년 중학 졸업 이후 가업 계승과 부모 봉양을 위해 마을을 떠날 수 없었다. 그는 군 제대를 앞둔 24세 때 결혼해서 아내와 함께 부모님을 도와 줄곧 농사를 지어왔다. 1973년 무렵 처음에는 노지 수박과 수도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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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앞장섰던 새마을운동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활발한 추진으로 도시화와 산업화가 빠르게 추진되었지만, 이농 인구의 증가 등 낙후된 농촌 문제 해결이 절실하였다. 새마을운동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근면, 자조, 협동을 바탕으로 농촌의 근대화를 추진할 대안으로 시작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9년 8월 수해 복구 확인 차 부산으로 가던 중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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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김씨 교리공파 교항계 종손 김해순 다리목 마을의 청도김씨는 ‘교리공파(校理公派) 교향계(橋項系) 문중’으로 일컬어진다. 한 곳에서 400년 넘게 지내오는 동안 입향조로부터도 벌써 15세, 16세손까지 태어났다. 청도김씨 교리공파 자손들만 전국적으로 1,000여 호에 이른다. 달성군 관내로는 다리목 마을을 중심으로 옥포읍 강림리, 법화리, 본리리를 비롯하여 논공면 등지에 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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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김씨 입향조 창원공ㆍ유원공 원산 묘역과 향사 교항리 다리목 마을은 청도김씨의 집성촌으로 현재 80여 호를 이룬다. 1990년대 가장 많을 때는 120여 호에 이르렀다. 청도김씨는 성주 이씨 다음으로 다리목 마을에 정착해서 지금까지 커다란 문벌을 이루었다. 다리목 마을 청도김씨 입향조(入鄕祖)는 처사 김창원(金昌元)과 선전관(宣傳官) 김유원(金有元) 형제이다. 선전관은 왕의 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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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김씨 재사 구목당 건립과 중건 구목당(九睦堂)은 다리목 마을 청도김씨 입향조인 처사(處士) 창원공(昌元公)과 선전관(宣傳官) 유원공(有元公) 형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구목당 명칭은 건립 취지를 대변하듯 위로 고조, 아래로는 증손에 이르기까지 입향조 후대 모든 자손들의 ‘화목’을 상징한다. 이러한 ‘화목’의 도리와 실천은 <구목당소지(九睦堂小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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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신씨 종친 모임 덕은회 회장 신인섭 고려 개국 공신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 장군을 시조로 하는 평산 신(申)씨는 30여 호로 다리목 마을에서 청도 김씨 다음으로 큰 문중을 형성한다. 달성군 일대로는 조선 후기 3명의 형제들이 옥포의 교항리 다리목 마을, 신당 마을과 논공 금포 마을 등에 각각 정착, 세거하기 시작하면서 일대에 자손을 퍼트렸다. 현재 평산신씨는 다리목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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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의 과실'로 통했던 교항 참외 ‘교항 참외, 신당 수박’이라는 말처럼, 충적 토양을 지닌 낙동강변의 입지적 특성으로 다리목 마을은 예로부터 참외가 유명하고 이웃하는 신당마을은 수박이 유명하다. 비닐하우스 시설 재배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1960년대 이전에는 노지 재배를 했다. “여기 참외 농사 안 한 사람이 없습니다. 130호도 넘었지요. 많을 때는 150호도 더 됐어요. 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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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심과 보릿고개 전설을 간직한 이팝나무 숲 옥포읍 교항리 다리목 마을에는 수령 200~300년의 이팝나무가 군락을 이뤄 해마다 봄철이면 장관을 이룬다. 이팝나무라는 이름은 꽃이 필 때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여 '이밥', 즉 쌀밥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팝나무는 24절기 중 여름의 문턱인 입하(立夏) 무렵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으로 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