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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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경상 감영에서 편찬한 현풍현 읍지. 『경상도 읍지(慶尙道邑誌)』는 경상도 71개 군현의 읍지를 합편(合編)한 지도책으로서 편찬 연대가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호구·전부(田賦)·환적(宦蹟)조를 통해 볼 때 1832년(순조 32) 무렵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의 도지(道誌)로는 『경상도 읍지』가 유일하다. 『경상도 읍지』는 통일된 체제로 갖추어진 최초의 경상도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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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경상도 현풍현에서 편찬한 읍지. 『현풍현 읍지(玄風縣邑誌)』의 작성 시기나 편찬 경위는 알 수 없지만, 내용 중 1785년(정조 9) 을사년 전결수(田結數)와 1786년(정조 10) 병오식 호구(戶口)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정조 연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관찬 사료에서는 1789년(정조 13) 6월 16일에 『해동 읍지(海東邑誌)』를 편찬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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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학자.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치정(穉靜), 호는 성재(省齋).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곽승화(郭承華)이고, 할아버지는 사과(司果)를 지낸 곽미(郭𤧞)이다. 아버지는 곽지완(郭之完)이며, 어머니는 진사 정옥견(鄭玉堅)의 딸 팔계 정씨(八溪鄭氏)이다. 부인은 유흥조(柳興祖)의 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곽근(郭赾)은 처음 배신(裵紳)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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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태정(泰靜), 호는 예곡(禮谷). 고조할아버지는 지익산군사였던 곽안방(郭安邦)으로, 청백리로 뽑혔다. 곽안방 대부터 현풍현 대니산 아래의 솔례동으로 복거(卜居)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정 곽승양(郭承陽), 할아버지는 참봉 곽당(郭瑭)이다. 아버지는 참봉 곽지인(郭之仁)이며, 어머니는 현감 조세은(曺世殷)의 딸 창녕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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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 아버지는 안음 현감(安陰縣監) 곽준(郭䞭)[1551~1597]이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 곽준은 안음 현감으로 황석산성(黃石山城)을 지켰다. 당시 곽준의 상관이던 백사림(白士霖)은 산성을 둘로 나누어 험준한 북쪽은 자신이 지키고, 평지에 가까운 남쪽은 곽준이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자 왜적들은 당연히 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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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현풍현 출신의 열녀. 본관은 거창(居昌). 아버지는 호조 판서(戶曹判書)에 추증된 신희양(愼希讓)[1536~1583]이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존재(存齋) 곽준(郭䞭)[1551~1597]은 안음 현감(安陰縣監)으로 두 아들 곽이상(郭履常)·곽이후(郭履厚)와 함께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 왜적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최후를 마쳤다. 곽씨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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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익보(益甫), 호는 괴헌(槐軒). 증조할아버지는 현감(縣監)을 지낸 곽위(郭瑋)이고, 할아버지는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을 지낸 곽지번(郭之蕃)이다.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 곽초(郭超)이며, 어머니는 홍양 수(洪陽守) 이완(李琓)의 딸 완산 이씨(完山李氏)이다. 부인은 좌랑(佐郞)을 지낸 이두문(李杜文)의 딸 영양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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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에 있는 의병장 곽재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 곽재우(郭再祐)[1552~1617]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이다. 1592년 5월 하순경 함안군을 완전 점령하고 정암진 도하 작전을 전개한 왜병을 맞아 대승을 거둠으로써, 경상 우도를 보존해 농민들로 하여금 평상시와 다름없이 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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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도 현풍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양정(養靜), 호는 존재(存齋).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진사(進士) 곽승화(郭承華)이며, 할아버지는 사과(司果)를 지낸 곽미(郭𤧞)이다. 아버지는 곽지완(郭之完), 어머니는 진사(進士) 정옥견(鄭玉堅)의 딸 팔계 정씨(八溪鄭氏)이다. 부인은 전기원(全基遠)의 딸 증(贈) 정부인(貞夫人) 전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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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곽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 곽준[1551~1579]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양정(養靜), 호는 존재(存齋)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면(金沔)이 의병을 규합하자 평소에 친히 지내던 교분으로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안음 현감으로 함양 군수 조종도(趙宗道)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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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현풍현 출신의 열녀. 본관은 포산(苞山). 아버지는 존재(存齋) 곽준(郭䞭)[1551~1597]이다. 류문호(柳文虎)의 처 포산곽씨(苞山郭氏)는 곽준의 딸이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곽준은 안음 현감(安陰縣監)으로 두 아들 곽이상(郭履常)·곽이후(郭履厚)와 함께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 왜적에 맞서 장렬히 싸우다 최후를 마쳤다. 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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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서 근대에 건립된 경상도 관찰사와 현풍 현감 등의 공덕비. 성하리 비석군(城下里碑石群)은 옛 관아 입구에 있던 35기와 1977년 구마 고속 도로 공사 시 성하동 옛 쌍산 고개 도로변의 2기, 군민체육관 앞 도로 공터에 있던 1기를 현풍 체육관 앞 공터 도로변에 모아 두었던 것을 1997년 현재의 장소에 연도별, 관직별로 분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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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곽씨십이정려각에 모셔진 15명의 행적과 그 의미.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의 입구에 들어가면 “충효세업(忠孝世業) 청백가성(淸白家聲)”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그것은 “충성과 효심은 대대로 물려받은 살림살이이고, 청렴과 결백은 집안을 드날린 명성이라네”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글귀를 마을 앞에 당당히 내세우는 데는 모두 그럴 만한 역사적 근거가 있기 때문일 터인데, 그 대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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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원. 예원서원(禮淵書院)은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1552~1617]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이다. 뒤에 곽준(郭䞭)[1551∼1597]을 추향하였다. 곽재우의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조직하여 경상도 일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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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 예연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책판 및 현판 일체. 예연서원(禮淵書院)은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1552~1617]와 존재(存齋) 곽준(郭䞭)[1550~1597]을 제향하기 위해 1618년(광해군 10)에 건립된 충현사(忠賢祠)를 전신으로 한다. 이후 정유재란 때 전사한 곽준을 추가로 제향하였다. 1677년(숙종 3)에 사액(賜額) 되었으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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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한정리에 있는 현풍 곽씨 동성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한정리는 현풍곽씨(玄風郭氏) 집성촌이다. 달창 저수지 인근에 위치한 이 마을은 지금부터 약 450년 전에 현풍곽씨 곽여랑이 곽씨들의 영남 모촌인 현풍 소례에 살다가 이곳에 입향한 이래 곽씨들의 세거지이자 집성촌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한정 1, 2리를 합해 40여 가구가 문중을 이루어 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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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지역에서 공자의 사상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우리나라의 유교 도입은 1289년(충렬왕 15)에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1243~1306]이 충렬왕(忠烈王)[1236~1308]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가 주자(朱子)의 『사서 집주(四書集注)』를 가지고 와 태학(太學)에서 본격적으로 강론하면서부터이다. 달성군에서는 충렬왕 때 안향이 재상이 된 다음에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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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서식하는 은행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 달성군의 마을 입구, 향교나 서원의 사적지, 길가 등에 분포하는 은행나무는 풍치목 또는 정자목으로 많이 심는다. 장수목으로 토양 조건에 관계없이 잘 자라며 가을에 노란 단풍과 함께 약용하는 열매가 열린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인데, 우리나라에는 암그루가 수그루보다 많다고 한다. 수꽃은 짧은 이삭 모양이고, 암꽃은 노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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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년 달성의 예연서원에서 경주의 용산 서원으로 보낸 연락문. 통문(通文)은 서원, 향교, 문중 등에서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을 경우에 각처의 서원, 향교, 문중 등에 보내던 일종의 연락문이다. 통문을 받은 측은 의견에 동의하거나 혹은 다른 의견이 있음을 답장으로 알렸으며, 반대할 때에는 보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경주 용산 서원에서 보내온 통문에 답하기 위하여 1712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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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곽준의 실기 책판. 존재(存齋) 곽준(郭䞭)[1551~1597]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수차례 공을 세워 안음 현감이 되었다. 정유재란 당시 황석산성(黃石山城)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이때 곽준의 아들인 곽이상(郭履常), 곽이후(郭履厚)가 함께 전사하였다. 곽준의 며느리인 신씨(愼氏)와 딸인 유문호(柳文虎)의 처는 남편을 따라 죽었다. 이후 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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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인간은 출생·죽음·우연·미래와 같은 한계 상황에 직면하면 초월적 존재나 원리를 통하여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과하며, 더 나아가 그 힘을 빌려 그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초기에는 세계내(世界內) 존재에 정령을 부과하는 토테미즘(Totemism)이나 애니미즘(Animism)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후 세계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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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위치한 유교 유산.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편찬자로 알려진 추적(秋適)의 활동지이자, 동방 오현 중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배출한 곳으로 유교 전통이 깊은 곳이다. 이러한 까닭에 조선 초 현풍 향교(玄風鄕校)를 비롯하여 1479년(성종 10) 달성 태고정(達城太古亭), 1568년(선조 1) 달성 도동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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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리에 있는 현풍 곽씨 가문에 포상된 12기의 정려를 한 곳에 모아 놓은 정려각. 현풍곽씨십이정려각은 1598년(선조 31)부터 영조 때까지 솔례 마을의 현풍곽씨 일문(一門)에 포상된 12기의 정려를 한 곳에 모아 놓은 정려각이다. 정려가 내릴 때마다 별도로 정려각을 세우던 것을 1725년(영조 1) 이후 현재의 자리 한 곳에 모아 세웠다고 한다.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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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대1리에 있는 현풍곽씨 동성 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대1리 소례마을은 현풍곽씨(玄風郭氏) 집성촌이다. 이 마을의 곽씨들을 비롯하여 인근 영남 지역의 현풍곽씨 약 1,200가구는 자신들을 현풍곽씨 중에서도 특별히 ‘소례 곽씨’라고 부른다. 이는 영남 지역 곽씨들의 모촌이 소례일 뿐만 아니라 소례마을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불천지위(不遷之位) 네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