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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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文虎 妻 苞山郭氏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홍수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 현풍현 출신의 열녀.
[가계]
본관은 포산(苞山). 아버지는 존재(存齋) 곽준(郭䞭)[1551~1597]이다.
[활동 사항]
류문호(柳文虎)의 처 포산곽씨(苞山郭氏) 는 곽준의 딸이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곽준은 안음 현감(安陰縣監)으로 두 아들 곽이상(郭履常)·곽이후(郭履厚)와 함께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 왜적에 맞서 장렬히 싸우다 최후를 마쳤다. 황석산성의 전투에서 곽씨 집안은 부자가 모두 순국하는 비극을 당하였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죽은 두 아들 중 맏이인 곽이상의 처인 거창 신씨(居昌愼氏)가 지아비의 소식을 듣고 자결하였다. 류문호(柳文虎)에게 시집을 간 곽씨는 친정의 비보를 들은 데다 전쟁에 나간 남편마저 전사하자 통곡을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친정아버지께서 전사하셨어도 따라 죽지 못한 것은 남편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남편마저 전사하였으니 어찌 차마 살 수 있겠는가.”
그러고는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이렇게 한 집안에서 다섯 사람이 연이어 순사(殉死)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졌다. 그러자 1598년(선조 31) 선조(宣祖)가 일문삼강(一門三綱), 즉 한 집안에서 세 가지 근본 윤리를 바로 세웠다는 말과 함께 정려(旌閭)를 하도록 명을 내리어 곽씨의 행적을 온 세상에 나타내도록 하였다.
[상훈과 추모]
곽씨의 정려(旌閭)는 현풍 곽씨 문중의 다른 정려들과 함께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리 1348-2번지[지동길 3호]에 위치한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玄風郭氏十二旌閭閣)에 봉안되어 있다.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은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9호로 지정되었다. 곽씨의 행적을 찬술한 「열부 곽씨 찬(烈婦郭氏贊)」이 곽종석(郭鍾錫)[1864~1919]의 『면우집(俛宇集)』 권144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