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논공읍 삼리1리는 고대 이래로 낙동강을 이용하는 교통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낙동강 건너 고령과는 왕래가 많았던 지역이었다. 그러한 교통의 중심에 무계나루터가 있었다. 〔낙동강을 따라 달성과 고령을 이어주는 무계진〕 낙동강 변에 위치한 삼리 1리 씩실마을에서 강을 건너면 바로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다. 그 무계리에는 예로부터 나루터가 있어서 두 지역을 왕래하는 교통의...
씩실마을 뒷산 너머에 있는 안건마을의 북동쪽 구릉 자락에는 논공읍의 낙동강 일대 고분군 가운데 가장 숫자가 많은 고분이 조성된 지역이었다. [달성군의 고분군] 삼리1리 씩실마을 지역은 서쪽을 흐르는 낙동강을 경계로 동쪽에서는 신라의 산성과 고분군이 확인되며, 강 건너 서쪽 지역에서는 대가야의 산성과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다. 즉 삼국시대 신라와 대가야 세력이 서로 대치하면서 긴장관...
일제 지배의 상징 신사가 마을 뒷산에 일제는 중일전쟁 이후 황국신민화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신사정책을 강화하였다. 신사정책은 치안 유지와 더불어 각종 종교단체를 전쟁에 협력시키는 수단으로 시행되었다. 또한 관민일체(官民一體)로 조선 민중을 전쟁에 동원하고자 하는 국민운동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다. 이를 위해 1936년 「신사제도 개정」에 대한 칙령을 통해 ‘일읍일면신사’(一邑面一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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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 낙동강 전투의 격전지 [한국전쟁 전반기 최후의 보루 낙동강방어선]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의 전개과정에서 미군과 유엔군이 참전하여 반격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 쪽으로 밀려나 긴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산을 기지로 총반격을 하고자 최후의 보루로 설정한 것이 이른바 낙동강 방어선이었다. 낙동강을 지키기 위해 한국군과 유엔군은 각 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