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리1리 씩실마을은 낙동강의 범람에 의해 형성된 승호와 비슬산 자락의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자연환경이 준 마을 이름〕 삼리1리가 속해 있는 논공읍은 고려 이래로 성주군 노장면에 속해 있다가 1906년에 와서 행정구역의 변동과정에서 소속이 현풍군으로 바뀌었다. 이후 1914년 노장면의 중리동, 내리동, 외리동을 중심으로 하고 진두동까지 합쳐 달성군 논...
승호 곁에 먼저 자리잡은 동호 이서 〔삼처사 집안에서 태어나〕 당시 성주군 고탄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었던 광산이씨 집안에서 강을 건너와 승호 곁에 먼저 자리를 잡았던 인물은 동호 이서였다. 이서는 당대 성주지역에서 학문과 효행으로 유명하였던 삼처사 가운데 한분인 모재 이홍우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한강 정구의 뜻을 이어〕 이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영특함을 보였다. 아버지 형제들이...
씩실마을을 만든 양촌 이난미 〔사촌 동호 이서의 권유로 낙동강을 건너〕 지금부터 400여년전 당시 성주군 고탄리에서 강을 건너와 승호(承湖) 위쪽에 집을 짓고 터를 잡은 이는 이서였다. 한강 정구의 제자였던 그는 스승의 죽음 이후 관직을 마다하고 승호 곁으로 이주해 와서 호를 동호(東湖)라 하고 집을 지어 학문을 연마하였다. 그런 가운데 이서는 낙동강과 승호, 그리고 비슬산 자락이...
삼리1리 씩실마을을 조성한 양촌 이난미는 당시 성주지역의 대표적인 학자였던 한강정구와 함께 회현서원에 배향되고 있는 광산이씨 삼처사 집안 출신이다. 〔한강정구와 삼처사〕 조선중기 한강 정구는 동강 김우옹, 송암 김면 등과 더불어 이황과 조식을 학문을 접하면서도 성주지역을 중심으로 학맥을 형성하게 된다. 이들이 살았던 성주 일대가 낙동강의 중간 지역이라는 지리적 위치를 배경으로 당시...
씩실마을의 중심에 자리 잡은 양촌 고택 [볕이 드는 곳에 처음 터를 잡은 양촌 고택] 양촌고택은 광산이씨의 세거지였던 성주군 고탄(현 고령군 성산면)에서 이른바 광산이씨光山李氏 삼처사三處士중의 한분으로서 낙강칠현으로 이름을 떨친 육일헌 이홍량의 차남인 이란미가 이주해 와 지은 집이다. 1610년(광해군 2년)에 건립된 이 집은 정남향인 마을의 한가운데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위...
슬곡과 양촌을 기리기 위해 만든 승호서당 〔이난귀, 이난미 형제를 기리는 재실 〕 논공읍 삼리1리 씩실마을은 비슬산자락이 뻗어 내려와 만들어진 나지막한 산과 낙동강이 만든 승호(承湖)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그래도 지명을 승호동이라 하기도 하였다. 정남향인 마을의 중심에 양촌고택이 있고 그 뒤쪽에 자리한 것이 승호서당이다. 승호서당은 조선중기 성주지역의 대표적인 유림으로서...
이광영을 추모하는 임호재 〔씩실마을의 재실들〕 삼리1리 씩실마을은 고령군 성산면 고탄동에서 건너온 광산이씨 일족들에 의해 형성된 마을이다. 그로 인해 마을에는 후손들이 자신들의 선조들을 기리는 재실등을 많이 건립하였다. 1970년을 전후하여 위은(渭隱) 이세환의 추모재사인 비락재(琵洛齋), 이달은과 이달민의 추모재사인 서락재(棲洛齋), 이당의 추모재사로 광거재(廣居齋)등이 건립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