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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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景甫 |
영어음역 | Gwon Gyeongb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윤오 |
[정의]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890년 10월 17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때, 진평동 일대의 주민들을 선도하여 만세 시위를 하다 체포되어 징역 6월의 옥고를 치렀다.
[활동사항]
1919년 3·1운동 대구 거사가 준비 중인 3월 7일,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인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매를 등사해 가지고 인동교회 목사인 이상백(李相佰)을 찾아와 진평동의 기독교 청년 신도를 중심으로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베끼고 태극기를 만들어, 거사일인 3월 12일에는 마을 곳곳에 독립선언서를 붙이고 밤이 되면 모두 참여하도록 알렸다.
권경보는 3월 12일 밤 8시경부터 뒷산 밑에 모인 주민 300여 명을 선도하여 밤이 깊도록 만세를 외쳤다. 경찰이 출동해 주동자 일부가 체포되면서 시위대는 일단 해산되었다. 권경보 등은 다시 시위를 추진하여, 3월 14일 오후 9시에 200여 명과 함께 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