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A02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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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순하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75호로 지정된 해은고택은 이동유(李東裕)[1768~1836]가 1788년(정조 12)에 건립한 가옥이다.
사랑채는 1816년(순조 16) 건립되었고, 손자인 이이현(李以鉉)의 호를 따라 해은고택이라 하였다. 해은고택은 이동유(李東裕)[1768~1836] - 이연운 - 이이현(李以鉉) - 이철연(李喆淵) - 이상유(李相遊) - 이만환(李萬煥) - 이수전(李壽銓) 이렇게 6대째 내려오고 있으며, 2008년부터 이만환(李萬煥)의 넷째 아들인 이수영이 지키고 있다.
이상유와 이만환은 이철연의 아우에게서 가(家)의 계승을 위해 들인 양자로, 이를 뒷받침 해 주는 것이 중문이다. 중문은 담장 사이 대문채의 오른편에 위치한 앞 가옥, 즉 이철연의 아우가 거주한 가옥과 연결된 문으로, 이철연의 아우가 살았던 가옥과 왕래가 잦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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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은고택 중문과 앞집
사랑채는 일자형 가옥이며 정면 7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으로, 주로 남성의 거처지가 되는 공간이다. 4칸의 방 중 제일 왼쪽부터 손자, 할아버지, 서재, 그리고 할머니가 거처했는데, 할머니가 거처한 방은 중사랑과 같은 역할도 하여 손님이 사용하기도 했다. 식사는 바깥어른인 남성들은 제일 왼편인 손자방에서 주로 했으며, 손님이 방문했을 경우 간혹 대청의 왼쪽 편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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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은고택 사랑채 대청마루
안채는 부엌과 안방, 마루 그리고 건넌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면 6칸 반과 측면 1칸 규모인 맞배기와집이다. 건넌방은 안사랑 역할을 하여, 아버지가 서재를 오가며 거주하였다. 큰방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안채의 안방은 며느리의 방이나, 시집을 오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시어머니인 할머니가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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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은고택 안채 부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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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은고택 안채-일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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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은고택 안채-안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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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은고택 안채와 광채
사랑채에는 할아버지방과 서재가 있었는데, 남성 거처자 중 서열이 가장 높은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었으며, 안채에서는 안방이 그러하다. 식사 때 자리 배치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확연하게 구분되는데, 부엌 출입이 가장 가까운 곳이며 가장 따뜻한 곳인 아랫목에서는 여성이, 가장 안쪽 자리인 윗목에서는 남성이 앉아 식사를 했다.
안채를 기준으로 왼편과 오른편에 모두 광채가 있었다. 오른편의 곳간채는 수장 공간으로 디딜방아와 납곡과 녹두 등의 곡식과 제사 때 사용하는 음식을 보관하였다. 그 옆으로 아이들 방이 있고, 사당과 안채를 연결하는 문이 마련되어 있다. 이는 사랑채를 지나 대문으로 나가 다시 사당으로 가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제사 음식을 마련하는 부엌과의 동선을 짧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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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은고택 안채에서 사당으로 가는 문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현재까지 복원되지 않은 것으로는 광채와 마구간 그리고 화장실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3칸으로 구성된 마구간이 있었는데 한 칸에는 말, 또 한 칸에는 소를 보관했고, 마지막 칸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안채를 기준으로 왼편에는 돌담으로 쌓은 큰 광이 있었는데, 그 광에서는 쌀을 가마니째 보관했다고 한다. 화장실은 담 너머 대문의 왼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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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은고택 광채가 있던 터
앞마당은 두 공간으로 분리되어 사용되었는데, 한 공간은 텃밭으로 간단한 채소 등을 심었고, 또 한 공간은 겨우내 쓸 땔감을 재워 놓았다. 6대째 해은고택을 지키고 있는 이동유의 후손들은 가족의 수가 제일 많았을 당시 30명이 넘었고, 항상 4명 이상의 일꾼들과 함께 생활을 했다고 전한다. 이처럼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이 거쳐 간 해은고택은 2008년 여름 2차 복원을 마친 상태이다. 연세가 많은 큰형님을 대신해 해은고택을 지키고 있는 이수영 할아버지는, 고택은 부지런해야 지킬 수 있다며 고택을 청소하는 데 하루를 보내곤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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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원리 해은고택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