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B02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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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재술 |
마이켈리스 대령이 지휘하는 미 제27연대는 워커 사령관이 그 용맹을 높이 평가하는 미 8군 예비대로서, 진동리와 영산 등 위급한 전선에 투입돼 전선의 파국을 막은 부대이다. 그래서 이 부대를 달리 소방대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곧 급한 곳의 불을 끄는 부대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미 제27연대는 18일 M-26 탱크 1개 중대와 포병 2개 중대의 지원을 받으며 다부동을 거쳐 북상하여 448고지와 256고지의 북단을 점령하고 적과 대치했다.
이날 밤부터 23일까지 적은 무려 6회에 걸쳐 27연대 진지에 야습을 감행해 왔다. 그들은 우선 맹렬한 준비 포격을 한 후 탱크와 자주포를 앞세운 수백 명의 병력으로 공격해왔다. 적 탱크는 미군 진지를 정찰하는 양 탐색 포격을 가하면서 접근했고, 보병은 무모하게도 트럭에 탄 채 다가왔다.
미군의 3.5인치 바주카포 사수는 적 탱크가 50m쯤 접근했을 때 포를 발사하여 적 탱크를 파괴했다. 그리고 미군 포병대대는 진지 전방 45m 이내까지 돌격해 온 적병에 일제히 포격을 가해 자주포와 트럭을 분쇄했다. 8월 18일에서 23일까지 벌어진 이 전투에서 미 제27연대는 적 탱크 14대와 자주포 4대를 파괴하는 등 적 1천여 명을 살상·격퇴했다.
특히 8월 21일 야간에는 이곳에서 한국전쟁 최초로 전차전이 전개되었다. 적은 전차와 자주포를 앞세워 미 제27연대 정면으로 대규모 야간 역습을 감행하였다. 이에 미 제27연대는 가용포를 총 집중하여 적 전차와 보병을 분리하고 아군 전차를 추진하여 적에 대응하였다. 이때 다부동 계곡에서는 쌍방 간에 전차포에 의해 발사된 철갑탄이 5시간 동안이나 교차되면서 불꽃을 튀기었다.
당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제27연대 장병들은 불덩이의 철갑탄이 어둠을 뚫고 좁은 계곡의 도로를 따라 메아리치며 상대방 전차를 파괴하기 위해 곧장 날아가는 모양이 마치 볼링공이 맞은편에 세워진 목표로 핀을 향하여 재빠르게 미끄러져 가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볼링장 전투라고 하였다.
그리고 미군 종군기자들은 다부동 길목인 천평동-진목동 사이 이 도로를 ‘볼링 앨리(Bowling Alley)’라고 기사에 썼다. 적이 전차를 앞세우고 포플러가 늘어선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미군 진지를 향해 철갑탄을 쏠 때 마치 볼링 핀이 쓰러질 때처럼 ‘따다닥 따다닥’ 하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당시의 전투에 대해 석주암(石主岩) 1사단 참모장은 다음과 같은 증언을 했다.
“마이켈리스 대령이 지휘하는 27연대가 유학산 아래 다부동의 저지대를 잘 지켜주었어요. 그는 매우 용감해서 적 포탄이 마구 떨어져도 부대를 후퇴시키지 않고 싸웁디다. 또 소수의 인민군이 따발총을 따르락거리면서 접근하면 미군은 대개 도망치는데, 27연대는 안 그랬어요. 미군도 지휘관 나름이라고 생각했지요. 어쨌든 병력이나 화력에 있어 훨씬 열세한 우리 사단이 적의 주공을 분쇄한 것은 사병들이 잘 싸운 탓도 있지만, 유리한 자연환경과 지형을 잘 이용하고 미군과 연합작전을 잘 해 미군의 지대공 화력을 십분 발휘케 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