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B03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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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순하 |
1970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조남희 씨는 담뱃가게를 인수하여 생계를 이어갔다.
가족의 생계활동은 그녀가 꾸려가는 담뱃가게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일부는 남편이 동네 사람들의 농사일을 도와주고 받은 품삯으로 해결했다. 그런데 담뱃가게를 운영하는 중 그녀는 큰 시련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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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희 씨가 운영하던 담뱃가게
“그래 와가지고 1년 안 돼 내가 몸이 아파 병원에 갔다 온 이튿날 저녁에 담배 도둑을 맞았어요. 그때 시절에 2백 몇십만 원 하는 큰돈이었어." 담뱃가게 운영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2백만 원이 넘는 담배를 도둑맞았고, 그 빚을 갚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녀는 그 사건으로 인한 심적·물리적 고통이 심한 듯했다.
당시 담배는 인근 도시인 대구에서 구입을 했는데, 이때 교통수단은 1960년대 초반부터 운행을 시작했던 마을버스였다고 한다.
버스는 1일 2~3회 정도 운행되었는데 그녀가 대구에서 담배를 싣고 오는 시간이 인근학교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과 맞물렸다. 이 때문에 만원인 버스에 몸을 싣기 전 창문으로 학생들에게 담배가 가득 든 가방을 넘기고 타야만 했다. 그녀에게 당시는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지금 그때의 그 학생들이 나이 50~60세가 다 넘어 아직도 자신을 보며 ‘그때가 좋았다’며 반갑게 인사를 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며 회상에 잠겼다.
1970년도 마을에 들어와 슈퍼를 하던 자리는 1981년 마을에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생겨 길이 나면서 없어졌다. 그 후 현재 마을쉼터 바로 옆 길가 집에서 슈퍼를 운영하기 시작하여 4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고 한다.
그녀는 길가에 산다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며, 다부 IC가 생기면서 도로가 넓어지자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겁이 난다고 했다. 특히 화물차 등의 큰 차들이 도로를 자주 이용하는데,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자동방지턱을 설치해 놨음에도 1년에 여러 차례 사고가 난다면서, 가끔 큰 차들이 많이 다닐 때면 집이 들썩일 정도라고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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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전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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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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