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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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政治 |
영어공식명칭 | Politics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경희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지역에서 수행되고 있는 갈등의 통합 및 조정, 희소한 자원의 권위적 배분과 관련되는 인간 활동의 총체.
[개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항상 희소한 자원을 획득하고 배분하는 과정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개개인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가 평등하지 않은 데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런 불평등과 갈등·대립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이며 권력을 매개로 한 강제력 행사와 설득, 그리고 이익을 표출하고 집약하는 일련의 정치 과정을 통해 수행된다. 따라서 정치란 지배와 복종의 상호 과정이며 권력의 획득·유지·행사를 둘러싼 제 집단 간의 투쟁, 그리고 이의 조정과 통합 과정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의 정치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수행된다.
[달성군의 정치 과정]
정치 과정의 주요한 요소는 선거민과 투표, 정당, 이익 집단 및 사회단체들이다. 1948년 실시된 5·10 총선거 이래 달성군에서는 주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6번의 국민 투표, 12번의 대통령 선거, 3번의 부통령 선거, 3번의 보궐 선거를 포함한 22번의 국회 의원 선거, 9번의 지방 자치 선거, 2번의 통일 주체 국민 회의 대의원 선거와 한 차례의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 1991년부터 주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구성하는 군수와 지방 의회, 대구광역시 의회 등을 통해 지역의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심의·의결·집행하는 지방 자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군민의 정치 참여도는 전국 평균, 또는 대구광역시 평균보다 다소 높게 나타나고 있다. 지역의 특성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당의 지역 사무소는 현재 새누리당 국회 의원 사무소, 더불어 민주당 달성군 지역 위원회, 민주 노동당 지역 사무소 정도이며 한국 노동 총연맹 달성 지역 지부, 달성군 재향 군인회, 한국 자유 총연맹 달성군 지부, 대한 노인회 달성군 지회, 대구 상공 회의소 달성군 사무소, 달성 청년 회의소 등 사회단체와 이익 집단들이 활동 중이다.
[달성군 정치의 특성]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1914년 3월 조선 총독부의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출범했다. 따라서 달성군의 정치는 해방 후 지역 정치 지도자들이 민족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다양한 정치 활동을 전개하고 미군정에 의해 민주주의 정치 제도가 이식되는 때를 그 출발점으로 한다. 이 시기 달성군은 행정 구역상으로는 대구시와 분리되어 있었지만 주민 생활은 대구와 동일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주요 행정 관청인 달성군청과 달성 경찰서도 대구시 중심가에 위치했다. 지리적으로도 달성군과 대구시는 일부 지역이 시기에 따라 서로 편입되었다가 분리되고, 다시 편입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즉 달성군은 1914년 3월 조선 총독부의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창설되면서 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지역을 제외한 대구 외곽 지역 대부분과 현풍군을 합친 16개 면을 행정 구역으로 했다.
그러다가 1938년 9월 27일 수성면, 달서면, 성북면 일부에 대구부 출장소가 개청되는데 이곳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신암동·신천동, 서구 비산동·이현동·평리동·중리동·상리동·내당동, 달서구 성당동·이곡동, 남구 대명동·봉덕동, 북구 침산동·산격동·복현동·검단동, 수성구 두산동·지산동·황금동·범어동·만촌동 일대이다. 그리고 1958년 1월 1일부터는 현재의 대구광역시 동구, 수성구, 달서구 지역인 달성군 해안면, 공산면, 가창면, 월배면, 성서면이 대구시에 편입되고 5년 후인 1963년 1월 1일에는 공산면[동변동·서변동 제외], 가창면[파동 제외], 월배면, 성서면 지역이 달성군에 환원된다.
이후 1981년 7월 1일 대구시가 직할시가 되면서 월배읍이 대구직할시 남구, 성서읍이 대구직할시 서구에, 공산면이 대구직할시 동구로 각각 편입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 대구직할시가 도농(都農) 복합형 광역시로 개편됨에 따라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정치인·정치 단체들은 그 활동 범위가 달성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구시와 밀접하게 연관되고 나아가 경상북도 전역, 전국에까지 영향력을 미쳤다. 그래서 1946년 10월 말 결성된 대구 달성 연합 농민 조합 협의회처럼 아예 단체의 명칭에 대구와 달성을 결합하는 사례가 나타나거나 달성군 출신 좌우익 인사들이 경상북도 유도회, 경상북도 인민 위원회, 대구 인민 위원회, 전국 인민 위원회 의장, 또는 간부로 활동하는 사례를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국회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구의 획정에 있어서도 5·16 쿠데타 이후 제3공화국 시기인 1963년 12월 17일 실시된 제6대 국회 의원 선거와 1967년 실시된 제7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경상북도 고령군과 함께 하나의 선거구로 편성되고, 1971년 7월 1일 실시된 제9대 국회 의원 선거와 1975년 선거에서는 고령군·경산군과 함께 하나의 선거구를 이룬다. 그러다가 제5공화국 수립 직후인 1981년 3월 15일 실시된 제11대 국회 의원 선거와 1985년 4월 실시된 제12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경상북도 고령군·성주군과 함께 하나의 선거구로 편성된다. 그러다가 1988년 4월 26일 치러진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과 함께 하나의 소선거구로 만들어져 제14대 국회 의원 선거 때까지 유지되다가 1995년 3월 1일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되면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선거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달성군의 정치는 현재까지도 대구광역시 및 경상북도 인근 지역의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달성 군민의 정치 지향]
대구광역시 달성군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은 집권 여당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며 보수적이다. 그렇지만 달성 지역은 일제 강점기 소작인 분쟁이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일어났으며 제1공화국 시기에는 “경북 달성군은 민주당의 본 고장”이라고 할 만큼 야당색이 짙었던 곳이다. 이런 정치 성향은 5·16 쿠데타 이후 민주 공화당이 집권하면서부터 여당인 민주 공화당 지지 일색으로 바뀌었다. 민주 공화당 지지 성향은 이후 민주 공화당이 민주 정의당 - 민주 자유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이합·집산하는 과정에서도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어 오고 있다.
제3공화국에서 제5공화국에 이르는 시기 민주 공화당과 정부의 핵심 인물로 꼽혔던 김성곤(金成坤), 박준규(朴浚圭), 구자춘(具滋春) 등을 연이어 지역 국회 의원으로 선출했으며 지역 연고가 전혀 없었던 박근혜(朴槿惠) 제19대 대통령도 달성에서 3선 국회 의원을 역임했다. 따라서 지방 자치 제도가 부활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달성 지역에서의 정치는 여전히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1963년 이래 특정 정당의 ‘텃밭’으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 다만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나 제14대 국회 의원 선거, 2010년 4월 실시된 지방 선거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필요한 경우에는 정당보다는 지역적 연고, 인물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정치 지향을 보여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