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060 |
---|---|
한자 | 金圃里 |
영어공식명칭 | Geumpo-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현미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4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 금포동으로 개설 |
---|---|
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 금포동에서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 금포리로 개칭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3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 금포리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면 금포리로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96년 9월 1일 -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면 금포리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로 승격 |
성격 | 법정리 |
면적 | 6.3㎢ |
가구수 | 784가구[2015년 12월 31일 기준] |
인구[남/여] | 1,624명[남자 869명/여자 754명]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금포리(金圃里)의 포는 넓은 들판이라는 뜻이며, 옛날 김해(金海) 김씨(金氏)가 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현풍군 노장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노장면의 금포동, 계호동, 평촌동, 봉동 및 장기동을 병합하여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 금포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면서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 금포리가 되었다. 1995년 3월 1일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어,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면 금포리가 되었다. 1996년 9월 1일 논공면이 논공읍으로 승격되면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금포리의 남쪽 끝 부분은 금계산(金鷄山)[489m]을 비롯한 산지 북사면(北斜面)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금포리의 남부 산지에서 발원한 금포천(金圃川)이 서부를 지나 북서쪽의 옥공들로 흘러내려 하류 부분에서 금포리의 동쪽 경계를 지나 흘러내린 교항천(橋項川)과 합류하여 금포리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현황]
금포리는 옥포읍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 논공읍으로 들어오는 진입부에 위치하는 마을로, 금포 1리에서 금포 4리까지 네 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2015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6.3㎢이며, 총 784가구에 1,624명[남자 869명, 여자 754명, 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금포리는 중심지적 성격을 지니는 마을이기는 하나 행정 기능 위주의 마을로 관공서와 중소 공단 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주거 지역은 아직 촌락 형태의 단독 주택 중심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인구가 많은 편은 아니다. 금포리는 동쪽으로는 달성군 옥포읍, 서쪽으로는 논공읍 삼리리, 남쪽으로는 노이리, 멀리 북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고령군 다산면과 이웃하고 있다.
금포리의 자연 마을인 돌기·석기(石基)·평촌은 옛날 이 마을에 사람들이 정착할 당시 돌이 매우 많아서 돌기라 불렀으며, 한자로 석기라 한다. 이후 넓고 평평한 들판에 형성되어 평촌으로도 불리었다. 새터·신기(新基)는 돌기 마을이 홍수가 잦아, 주민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새로 형성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졌다. 가재골은 이곳 지형이 가재와 같다 하여 가재골이라 부른다.
금포리의 남쪽으로 광주 대구 고속 국도[88 올림픽 고속 국도]가 통과하며, 고속 국도 북쪽으로 국도 5호선이 통과한다. 광주 대구 고속 국도와 국도 5호선 사이에 달성군청을 비롯한 시가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국도 5호선 주변으로 돌기, 봉동, 새터 등 자연 마을이 남아 있다. 국도 5호선 북쪽은 공업 지대가 형성되어 달성 옥포 농공 단지가 있으며, 중소 공장들이 산재해 있다. 북서쪽 낙동강 변의 옥공들에서는 시설 원예 농업을 중심으로 한 농업 지대가 펼쳐져 있다. 행정 중심지인 금포리는 2005년에 이전하여 건립된 달성군청 신청사 외에도 논공읍사무소, 논공 파출소 및 논공 우체국 등이 있으며, 학교 시설로는 대구 금포 초등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