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0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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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友鹿里 |
영어공식명칭 | Ur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현미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4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으로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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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58년 1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에서 대구시 우록동으로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1월 1일 - 대구시 우록동에서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에서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로 개칭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3월 1일 -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로 편입 |
성격 | 법정리 |
면적 | 12.2㎢ |
가구수 | 267가구[2015년 12월 31일 기준] |
인구[남/여] | 536명[남자 279명/여자 257명]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우록리(友鹿里)는 이 지역의 우록이라는 명칭에서 나온 것으로, 옛날 신선들이 이곳에 내려와 사슴을 벗 삼아 놀았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벗 우(友) 자, 사슴 록(鹿) 자를 써서 우록이라 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대구부 상수남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수남면의 우록동, 상백동 및 하백동을 병합하여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이 되었다. 1958년 1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으로 대구시에 편입되어 대구시 우록동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 다시 달성군에 환원되어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면서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가 되었다. 1995년 3월 1일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어,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우록리는 서쪽은 우미산[736m], 남쪽은 삼성산[668m], 북쪽은 통점령과 삼정산[566m]에서 우미산[736m]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로 둘러싸여 있다. 우록리는 신천의 발원지로서, 우미산과 삼성산 부근에서 발원한 신천이 우록리 동쪽의 삼산리로 흐른다. 우록리 남부의 산지에서 발원한 하천 또한 우록지에 저수되었다가 신천과 합류하여 우록리의 동쪽 경계를 향해 흐른다. 신천을 따라 형성된 계곡 주변의 산기슭에 취락들이 있다.
[현황]
우록리는 가창면 남쪽 끝에 위치한 산간 마을로, 우록 1리 및 우록 2리 두 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2015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12.2㎢이며, 총 267가구에 536명[남자 279명, 여자 257명, 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우록리는 동쪽으로는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서쪽으로는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쪽으로는 청도군 이서면, 북쪽으로는 달성군 가창면 주리·옥분리와 접하고 있다. 또한 북쪽으로는 대구광역시 수성구로, 남쪽으로는 팔조령을 넘어 경상북도 청도군으로 연결된다. 우록리의 자연 마을 백록(白鹿)은 임진왜란 때 사명 대사(四溟大師)가 마을 위쪽에 있는 남지장사(南地藏寺)를 승병 훈련소로 이용하였는데 그 무렵 흰 사슴이 나타나서 백록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황촌(黃村)은 황새가 울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으로 되었으며, 개미골은 지형이 개미집 같이 약간 불룩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록리의 도로망은 우록리의 동쪽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를 통과하는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과 연결되어 있으며 주로 산간 계곡에 형성된 농경지에서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록리의 문화 유적으로는 녹동 서원(鹿洞書院)과 남지장사가 있다. 녹동 서원에는 1975년에 보물 제594호로 지정된 「최덕지 초상 및 유지 초본(崔德之肖像및油紙草本)」이 있다. 남지장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로서 부속 암자인 남지장사 청련암(南地藏寺靑蓮庵)은 유정[사명 대사]이 수행하던 곳으로 더욱 유명해진 암자이며, 현재 대구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