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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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廣學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06년 8월 대구 달성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계몽 운동 단체.
[개설]
1906년 8월 대구에서는 대구 광문사(大邱廣文社)와 다른 별개의 대구 광학회(大邱廣學會)가 설립되어 교육 운동을 중심으로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설립 목적]
대구 광학회는 민지 개발(民智開發)과 욕민 광학(欲民廣學)[교육 진흥 운동]. 식산흥업(殖産興業)을 통한 근대적 상공업의 발달을 목표로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 광학회는 대구·달성 지역의 최대림(崔大林)·이일우(李一雨)·윤영섭(尹瑛燮)·김선구(金善久)·윤필요(尹弼五)·이종면(李宗勉)·이쾌영(李快榮)·김봉업(金鳳業) 등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대구 광학회는 민지 개발을 위해 교육의 확대 실시를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세계열강처럼 광범위하게 학교를 설립하고, 유치원·박물관·도서관·박람회·토론회·연설회·도서 종람회·신문종람소 등 각종 교육 시설을 세워 학술을 강구하여, 지식을 연마하자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대구 광학회의 설립은 국민의 학문을 넓히고자 하는 욕민 광학에 있었다.
대구 광학회는 회원 이일우가 운영하던 우현 서루(友弦書樓)를 사무소로 활용하였다. 우현 서루는 뛰어난 사람을 초빙하여 학당장으로 삼았고, 지식 발달에 유익한 내외국 신구서적과 각종 신문·잡지 등을 광범위하게 구입하여 학당에 비치하였다. 대구 광학회는 인민 대의소와 유사한 대구 시의소(大邱市議所)를 만들었다. 대구 시의소에는 교육부가 있어 교육부 주관으로 환등회(幻燈會)를 개설하여 무료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대구 광학회는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뒤 해산되었다. 대구 광학회의 계몽 운동은 1908년 대한 협회 대구 지회로 계승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구 광학회는 한국 근대 계몽 운동을 통한 민족 운동을 심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