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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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韓民國 吉林 駐在 軍政司 獨立 資金 - 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대한민국 길림 주재 군정사의 독립운동 자금 마련 운동.
[역사적 배경]
일제의 한 일 병합 이후 독립 전쟁론에 입각한 독립군 기지 건설 운동이 중국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를 위한 독립운동 자금을 국내에서 조달하는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대한민국 길림 주재 군정사는 1918년 4월 무렵 김영순이 중국 길림성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유동열(柳東說)을 만나 조선 독립을 위해 청년을 규합하여 군대를 양성할 목적으로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이다.
[경과]
1918년 7월 무렵 김영순은 서울로 돌아와 이채우, 김찬규(金燦奎), 김철(金喆) 등을 함께할 동지로 규합하였다. 김찬규와 김철은 곧바로 유동열 명의의 군자금 모집 문서를 만들어 전국의 부호들로부터 운동 자금을 마련할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증로는 군정사의 이채우와 김영순을 만나 목적을 달성하기로 결의하고 경상남도로 출발하였다. 또 경상남도에서 돌아온 이증로는 김영순을 통해 이시우와 함께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장산리(長山里)에 사는 부호 김장섭(金章燮)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로 하였다. 이때 김영순으로부터 권총을 전해 받은 이시우가 먼저 남대문 정거장을 통해 목적지로 출발하고, 이증로는 목적지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결과]
김장섭의 집에서 이증로를 기다리고 있던 이시우가 일제 관헌에 체포됨으로써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은 실패로 끝났다. 그 뒤 이증로는 서울에서 이채우, 김영순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2월 15일 경성 지방 법원에서 이채우와 김영순은 징역 2년, 이증로와 이시우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대한민국 길림 주재 군정사 독립 자금 마련 운동 은 1910년대 후반 국내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자금 모집 운동의 전형적 사례임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