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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성 군정서 흥업단 군자금 모집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800411
한자 吉林省 軍政署 興業團 軍資金 募集 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1년 4월연표보기 - 달성군 가창면 출신의 우홍기가 김인제·심상욱·안모 등과 군자금 모집 계획을 세움
종결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이만준과 박수의 경찰에 체포
전개 시기/일시 1922년 1월 - 우홍기가 양한위·권충락·홍종락 등과 경상북도 청도군의 자산가를 대상으로 군자금 확보 계획을 세움
전개 시기/일시 1922년 4월 - 달성군 출신 박수의가 홍종락·이재술 등의 군자금 확보 활동을 지원
성격 군자금 모집 사건
관련 인물/단체 흥업단|이만준|우홍기|박수의

[정의]

중국 푸우쑹[撫松縣]에서 조직된 지린성 군정서 부속 기관인 흥업단의 군자금 모집 사건.

[역사적 배경]

흥업단은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즈음 중국 푸쑹[撫松]에서 조직된 지린성 군정서 부속 기관이었다. 흥업사에 전라남도 장성 출신의 이만준(李萬俊)이 가입하여 회계 서기로 활동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이후 5월 말까지 경상북도 달성군 무태 출신 이시영(李始榮), 전라북도 익산 출신 성호(成浩)와 함께 조선에서 만주로 건너온 청년 400∼500명을 모집하여 김호가 경영하는 백산 학교에 보냈다. 그 뒤 이만준은 조선 내에서 20만원의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권총 2정, 탄약 약 50발을 가지고 권총 1정과 탄약 40발을 가진 김인제, 최성기, 황문익 등과 순차적으로 잠입하였다. 그리하여 이만준은 1922년 2월까지 손기성·권충락·이재술·김연환·최명해·심상욱·박사숙·정낙산·손재헌 등을 동지로 끌어들이는 성과를 올렸다.

[경과]

지린성 군정서 흥업단원 이만준이 활동하는 가운데 달성군 가창면 출신의 우홍기(禹洪基)는 이만준과 손종헌 등을 통해, 대구에 사는 달성군 출생의 박수의(朴守義)는 이만준과 이재술을 통해 흥업단에 가입하였다. 우홍기는 이만준·심상욱·김인제·안모 외 성명 미상의 두 명과 함께 1921년 4월 하순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고례동 뒷산에서 비밀리에 만나 김인제·심상욱·안모 등이 시례동 자산가인 손모에게서 군자금을 모집할 계획을 세웠다. 그에 따라 김인제 등 세 명은 권총 2정을 가지고 손모를 습격하여 실탄 2발을 발사하며 군자금을 확보하려 했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우홍기는 또 양한위·권충락·홍종락 등과 함께 1922년 1월 하순 경상북도 청도군의 자산가를 대상으로 군자금을 확보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곧바로 우홍기 등 네 명은 권총 2정을 가지고 대구에서 청도군으로 가기 위해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에 모였으나 안내 역할을 맡은 우홍기가 나타나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유일한 여성으로 참여한 박수의는 1922년 4월 하순 이만준의 지시로 홍종락·이재술 등이 경상북도 봉화 지역 자산가를 대상으로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지원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권총 2정과 실탄 47발을 이재술 일행에게 비밀리에 전달하였다. 홍종락은 일단의 사고로 중도에서 탈락하고, 대신 김우창이 1922년 5월 27일 이재술과 함께 대구를 출발하여 봉화로 향하였다. 그러나 이재술 일행은 자동차로 봉화로 이동하던 중 자신들의 활동을 눈치 챈 경상북도 경찰부에 의해 경상북도 군위에서 체포되었다.

[결과]

지린성 군정서 흥업단 군자금 모집 사건 은, 독립운동 자금 모집 운동을 전개하던 1922년 이만준과 박수의가 서울에서 동대문 경찰서 경찰에게 체포되고 다른 관련자도 일제 경찰에 검거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1923년 대구 지방 법원에서 이만준은 징역 5년, 박수의는 무죄를 각각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지린성 군정서 흥업단 군자금 모집 사건 을 통해 중국 소재 항일 운동 단체의 국내 독립운동 자금 모집 운동이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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