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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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黨 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독립 전쟁론에 입각한 무장 항일 투쟁을 목표로 비밀 결사를 조직한 사건.
[역사적 배경]
1928년 4월 하순부터 신간회 대구 지회의 노차용·장택원·정대종 등은 대구 시내 문상직의 하숙에서 만나 신간회나 근우회에서 야학이나 강연회 같은 수단으로 민족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직접적인 무력 투쟁 방략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비밀 결사를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경과]
1928년 5월 18일에 달성군 성북면 산격동 냇가에서 모여 1차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 뒤 같은해 5월 20일 오후 2시 달성 공원 숲속에서 다시 회합을 열어 정식으로 비밀 결사를 조직하였다. 비밀 결사의 이름 후보로 미회(未會)[을미년의 미], 혁민당, ㄱ당, 바바당 등이 나왔으나 관헌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ㄱ당’이라 정하였다. ㄱ은 한글 자음의 첫째로 한국의 바탕을 뜻한다고 한다. ㄱ당은 만주 지역에 독립군을 양성하고, 정착촌을 개척하여 실력을 양성하면서 민족 독립을 달성하려 하였다.
동지 획득에 나서는 과정에서 이강희(李康熙)와 유상묵(柳商默)이 참여한 가운데 같은 해 6월 달성군 유가면[현 유가읍] 출신의 곽동영(郭東英)도 참여하였다. 곽동영은 자신에게 입회 권유한 노차용과 함께 6월 11일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노차용과 곽동영은 오후 9시쯤 해안면 둔산동 부호 김교식 집에 들어가 잡지 발행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5,000원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김교식이 거부하자 권총으로 위협하여 5,000원의 약속 어음을 적게 하였다.
[결과]
노차용과 곽동영은 김교식에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 것을 계기로 ㄱ당 관련자들이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이 사건의 관련자 10명은 1928년 7월 24일 대구 지방 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일제 관헌 당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신간회 대구 지회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더욱 강화하였다.
[의의와 평가]
ㄱ당 사건 은 1920년대 신간회 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활동가들이 독립 전쟁론에 입각한 무력 항일 투쟁 노선으로 전환을 꾀해 국내 민족 운동의 노선 확대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