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4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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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民保導聯盟 |
영어공식명칭 | National Guidence of Alliance, Bodo-Leagu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49년 6월 좌익 인사의 전향 및 교화를 위해 조직된 반공 성격의 관변 단체.
[개설]
보도 연맹은 1948년 12월 「국가 보안법」의 구체적 운용 대책에 따라 조직한 반공 관변 단체로서 정식 명칭은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이다.
[설립 목적]
보도 연맹은 「국가 보안법」에 저촉되는 사람 중 좌익을 교화 전향시킬 목적으로 조직되었고, 구성원들은 좌익 전향자들이었다. 곧 남한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집단 및 결사의 구성원이었다가 전향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변천]
국민보도연맹은「국가 보안법」에 따라 사상 선전에 동원되다가 한국 전쟁을 전후한 시기 달성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연맹원이 대량으로 학살을 당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학살의 규모는 방대하나 처형된 사람들의 실제 수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달성에서도 보도 연맹과 관련된 양민 학살이 빈발하게 자행되었다. 국민보도연맹은 한국 전쟁이 격화되고 장기화되면서 소멸되어 갔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국민보도연맹 중앙 본부는 전향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화, 곧 사상 개조를 진행하였고, 국민들에 대해서는 반공 선전을 위한 도구로 적극 동원하고 활용하였다. 반면, 마을 단위의 좁은 지역 차원에서는 보도 연맹원이 된다는 것 자체가 사상적으로 낙인이 찍히는 효과를 내었다.
[현황]
창설 당시 과거의 좌익 가담 행위를 일체 불문에 붙이고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지도하고 계도해 나가겠다는 것이었으나, 문맹률 70% 이상인 농민들과 일부 국민들은 그것이 무슨 단체인지도 모른 채 마을 이장이나 유지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도장을 찍고 가입하였다고 관계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달성군도 국민보도연맹이 조직되었고, 가입과 운용은 전국적인 흐름과 동일하였다. 곧 보도 연맹의 가입 과정은 일률적으로 적용된 기준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역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마을별 지도급 인사가 무조건 도장을 찍게 해 좌익과는 전혀 무관한 주민까지 가입하기도 했고, 양식 배급과 여행 특혜를 준다고 속여 가입시키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적용 대상이 되어야 할 좌익의 핵심부는 가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국민 보도 연맹에 가입한 사람의 수는 달성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10만 혹은 30만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그러나 이처럼 보도 연맹원의 수가 크게 차이나는 것은 그만큼 통제가 미약하여, 주먹구구식으로 인원을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국민보도연맹은 남북 분단 상황 아래 상호간 이념 대립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반공 교화와 사상 선전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던 바 반공 주의의 도구로 적극 활용되었다. 그 뒤 한국 전쟁 전후한 시기 보도 연맹원의 상당수가 학살당하는 비극을 맞게 됨으로써 달성군을 비롯한 전국에 큰 역사적 상처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