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5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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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寒泉書院 |
영어공식명칭 | Hancheonseowon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동로 117[행정리 87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서원.
[개설]
한천서원(寒泉書院)은 충렬공(忠烈公) 전이갑(全以甲)[?~927]과 충강공(忠康公) 전의갑(全義甲)[?~927]을 배향하고 있다. 전이갑의 본관은 정선(旌善), 자는 자경(子經), 호는 도원(挑源)이다. 고려의 개국 공신이다. 927년(태조 10) 견훤의 침공을 받은 신라를 돕기 위하여 왕건과 함께 출정하여 동수산[현 팔공산]에서 싸우던 중 순절하였다. 전의갑은 전이갑의 동생으로 동수 전투에서 형과 함께 순절하였다.
[위치]
한천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동로 117[행정리 870]에 위치한다. 가창면사무소[달성군 가창면 가창로 1100]에서 가창로[가창교 방향]를 따라 약 140m 이동한 후 청도, 녹동 서원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약 2㎞ 직진한 뒤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행정교를 건너 행정로를 따라 약 2.1㎞ 이동하면 오른쪽에 한천서원이 있다.
[변천]
한천서원의 경우 자료마다 건립 시기에 대해 차이를 보인다. 『영남 읍지(嶺南邑誌)』의 경우 1840년(헌종 6)[경자], 『달성 군지(達城郡誌)』와 『교남지(嶠南誌)』는 1847년(헌종 13)[정미], 서원에 소장된 한천재 중건기(寒泉齋重建記)와 한천서원 복설기(寒泉書院復設記) 등의 현판은 1838년(헌종 4)[ 무술]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료의 소략으로 건립 연대를 명확하게 밝힐 수 없으나, 헌종 연간 사우(祠宇)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흥선 대원군 집권기 때인 1871년(고종 8) 훼철된 것을 1908년 자손들이 힘을 모아 몇 칸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1960년 전영기(全榮基) 등의 후손이 한성 대동 종약원(漢城大同宗約院)과 대구 종친회의 지원을 받아 한천재(寒泉齋)를 중건하였고, 1989년 한천서원으로 복원하였다.
[형태]
서원의 외삼문을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에 고려 태사시 충렬 전공 순절비(高麗太師諡忠烈全公殉節碑)가 있다. 비 뒤편으로 왼쪽에 강당인 한천서원과 오른쪽에 내삼문과 담장, 사당인 충절사(忠節祠)가 있다. 한천서원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 팔작지붕 건물이다. 충절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 밖에 경내에 전 성균관 부원장 옥천 전공 병조 기공비(前成均館副館長沃川全公柄朝紀功碑)와 우물, 각종 기념수, 한천서원 지석묘 등이 있고 서원 바깥 마당에는 수령 700~800년 되는 은행나무와 육각 정자가 있다.
[현황]
한천재 중건기를 비롯한 한천서원 복설기, 상량문(上樑文), 전씨 유적서(全氏遺蹟序) 등의 현판을 소장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0일 유림 향사, 음력 9월 15일 후 둘째 일요일에 향사를 봉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