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8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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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之華 |
영어공식명칭 | Lee Ji Hwa |
이칭/별칭 | 이실,다포,부강거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화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달성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이실(而實), 호는 다포(茶圃)·부강거사(浮江居士). 고조할아버지는 형조 정랑 이광원(李光元), 증조할아버지는 예산 현감을 역임한 이필(李佖)이다. 이필에 이르러 하빈(河濱)에 거주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병절교위 이경두(李慶斗)로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토벌한 공적으로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증직되었다. 할머니는 선교랑 윤황(尹滉)의 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아버지는 현감 이종문, 어머니는 지평 전경창(全慶昌)의 딸 옥산 전씨(玉山全氏)이다. 큰형은 현령 이지영(李之英)이다. 부인은 숙부인 완산 이씨이다.
[활동 사항]
이지화(李之華)[1588~1666]는 할아버지 이경두에게 글을 배우고, 달성군 다사읍 서재에 있는 선사재에서 낙재 서사원과 한강 정구, 여헌 장현광에게 학문을 익혔다. 1610년[광해군 2]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613년 문과 병과(丙科)로 급제, 설서(說書)·검열(檢閱)·대교(待敎)를 역임하였으나, 1621년 정언(正言)으로 이이첨(李爾瞻)을 탄핵하다 파직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의병장 장현광의 막하로서 군량(軍糧)을 조달하였다. 1630년 대동도 찰방으로 처음 부임하여, 이어서 함경도 도사, 예천 군수를 역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의병을 지휘하여 왕을 호종(扈從)하기도 하였다. 병자 호란 이후 파주(坡州) 목사, 김해(金海)·창원(昌原) 부사를 거쳐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1652년 12월 함양 군수에 부임하여, 1654년[효종 5]에 안렴사(按廉使)의 배척을 받고 영해에 유배되었다가 1656년[효종 7]에 유배에서 풀려 다산(茶山)[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 머물며 벼슬을 하지 않고 한적하게 지냈다.
[저술 및 작품]
이지화의 문집인 『다포집(茶圃集)』이 있는데, 전의 이씨 가문의 인사들의 문집과 함께 엮어서 『전성세고(全城世稿)』로 편찬하였다.
[묘소]
1666년[현종 7] 2월 15일 정침에서 사망하였으며, 4월 20일에 성주 화원현 금성(錦城) 아래 오좌(午坐)에 장례지냈다. 그 후에 대구 화원창(花園倉)[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면] 뒷편 목단산(牧丹山) 아래 인형(釼形) 오좌(午坐)에 개장(改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