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8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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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相徹 |
영어공식명칭 | Leesangcheo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봉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상철(李相徹)[1897~1935]은 1897년 1월 8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금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8월 상하이 임시 정부 특파원, 경상북도 교통 사무국 책임자로 국내에 파견된 이현수(李賢壽)로부터 달성군 교통 사무 지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현수와 함께 경고문, 최급 경고문(最急警告文), 『자유 신보(自由申報)』, 물품 불구매 고지서(物品不購買告知書), 납세 거절 협박문(納稅拒絶脅迫文), 공채 모집서(公債募集書) 등을 대구·안동·영천·경주 등 지방 관공서로 발송하고 주요 거리에서 나누어주면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또한 일제 공직자나 친일 부호들에게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함과 동시에 군자금을 모집하고 공채를 모집하는 등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1월 24일에는 미국 워싱턴 군축 회의에 대비하여 독립운동의 중요성을 집필한 『자유 신보』 영문판을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나누어주는 활동을 하다가 김달문(金達文)·김은수(金殷壽) 등이 체포됨에 따라 서울로 도피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상철의 공훈을 기리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정부에서는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