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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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炳旭 |
영어공식명칭 | Kimbyeonguk |
이칭/별칭 | 서원박,주홍,고담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봉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주홍(宙弘), 호는 고담(古潭). 서원박(徐原博)이라는 창씨개명을 사용하였다. 중시조는 고려 인종 때의 위국 공신(衛國功臣)인 김녕군(金寧君)이다.
[활동 사항]
김병욱은 1940년 대구 사범 학교에 재학 중 조빈영(趙賓影)·현영만(玄泳晩)·이형수(李亨洙) 등과 함께 국권 회복 운동의 구체적인 방법을 의논하였다. 이들은 나라의 걱정을 없앤다는 의미에서 항일 지하 단체인 무우원(無憂園)을 창단하였다. 경제적인 자립으로 독립을 쟁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문장 연구」, 「글공부」 등의 유인물을 발간하여 나누어주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는 대구 사범 학교 졸업 후 교사로 근무하면서 이러한 사업을 계속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1944년 6월 16일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다. 수감 중 광복을 맞아 다시 활발한 사회사업을 하였다.
1953년 10월 성서 면의회 초대 의장, 1956년 10월 달성군 참사회(參事會) 부의장, 1957년 4월 달성군 교육청 교육 위원에 선출되었다. 1957년 10월 대구 시의회 의원, 11월 의회 건설 분과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60년 시의회의 시정 수습 위원, 1967년 1월 1일 달성 농지 개량 조합장에 선출되었다. 1979년 2월 5차 연임(連任)되어 대구와 창녕을 포함한 달성군 일원 수리 사업에 뛰어난 공을 세웠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1967년 농지 개량 조합장으로 재직시 많은 공적을 쌓아 마을 사람들이 「애국지사 고담(古潭) 김병욱(金炳旭)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 이 비는 파산동 야산[현재 계명대학교 부근]에 있었으나 1996년 4월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 1189번지에 위치한 와룡 공원으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