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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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昌煥 |
영어공식명칭 | Seong Changhwa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남정원 |
[정의]
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경제학자.
[활동 사항]
성창환(成昌煥)[?~?]은 1917년 8월 9일 경상북도 달성군 유가면[현 유가읍]에서 태어났다. 1935년 경성 제일 고등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구치[山口] 상업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이던 1939년 2월 유재우(柳在佑)·민병구(閔丙久)·황계주(黃啓周) 등과 함께 교내 조선인 학생 친목 단체인 여우회(麗友會)의 성격을 항일 결사로 바꾸고 일제의 식민 정책에 반대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펴나갔다. 1939년 말 부산에서 열린 여우회 졸업생 송별회 자리에서 동지들의 결속을 강화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하였으며, 1940년 4월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는 신입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높이고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을 배격하는 활동 등을 펼쳤다. 이같은 활동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1940년 7월 10일 체포되었으며, 1년여 동안 구금 상태로 조사를 받다가 이듬해 기소 유예로 풀려났다.
해방 후에는 고려 대학교 전임 강사, 부산 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고려 대학교 조교수·교수로 재직하였고 상과대 학장과 경영 대학원장 등을 지냈다. 5·16 군사 쿠데타 직후에는 박정희국가 재건 최고 회의 의장의 경제 고문과 금융 통화 위원회 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묘소]
2009년 1월 20일 사망한 뒤 국립 대전 현충원 애국 지사 제3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 표창과 1990년 대한민국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