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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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聖容 |
영어공식명칭 | Park Seongyong |
이칭/별칭 | 박상용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남정원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의 3·1 만세 시위를 주도한 달성군 출신의 항일 운동가.
[활동 사항]
박성용(朴聖容)[1903~1963]은 1903년 1월 17일 경상북도 달성군 성북면 침산동에서 태어났다. 계성 학교(啓聖學校) 학생으로 1919년 대구에서 벌어진 만세 시위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대구에서 일어난 제1차 만세 시위 후 학생들과 시민들의 항일 저항 의식은 더욱 높아갔고 3월 9일 오후 3시경에는 계성 학교 학생을 비롯한 150여 명의 학생들이 다시 만세 시위를 벌이기 위해 달성 공원(達城公園)으로 모여들다가 일제 군경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당시 계성 학교 학생 박성용은 고등 보통 학교 학생 박남준(朴南俊)과 김재소(金在炤), 같은 학교 학생 박태현(朴泰鉉) 등과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박성용은 다음 날인 3월 10일 달성 공원에서 다시 일어난 만세 시위에 태극기를 제작하고 계성 학교 학생들을 참여시켜 수백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게 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같은 해 4월 18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대한민국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