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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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正讚 |
영어공식명칭 | Seo Jeongchan |
이칭/별칭 | 사중,소당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남정원 |
[정의]
개항기 달성군 출신의 한학자이자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사중(思中), 호는 소당(蘇堂). 전귀당(全歸堂) 서시립(徐時立)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서병수(徐昞洙)이다.
[활동 사항]
경상북도 달성군 도동(道洞)에서 태어난 서정찬(徐正讚)[1899~?]은 낭산(郞山) 이후(李垕)에게 한학을 배웠다. 1919년 독립 청원 운동으로 유림들이 투옥되자 대구 형무소에 수감된 유림들의 석방 운동을 펼쳤다. 3·1 운동과 유림들의 독립 청원 운동이 실패하자 투쟁 방법을 전환한 유림의 김창숙(金昌淑)은 만주 및 내몽골 지역에 한국인 마을과 무관 학교를 세우고 무장 투쟁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그 목적 달성에 필요한 20만원을 국내의 유림을 통해 모집하기로 하고 1925년 5월에 송영우(宋永祐)를 국내에 파견시켰다. 서정찬은 송영우·김화식(金華植)·김동식(金東植) 등 각처의 유림들과 군자금 모집을 추진하던 중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서정찬은 증거 불충분으로 3개월만에 풀려났다. 그후 서정찬은 고향에서 후진들의 교육에 전념하였고, 해방 후에는 건국 운동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