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9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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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丹陽禹氏 |
영어공식명칭 | DannyangU Clan|DannyangUss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2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소희 |
[정의]
우현을 시조로 하고, 우성범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개설]
우현(禹玄)을 시조로 하는 단양우씨는 백록당(白鹿堂) 우성범(禹城范)[1546~1588]이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입향한 이래 그 후손들이 가창면 우록 2리 백록 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나, 현재는 많이 축소되어 몇 가구만 거주하고 있다.
[연원]
단양우씨의 시조는 고려조에 호장을 지낸 우현이다. 고려 시대 문하시중을 지낸 6세손 우중대를 중시조로 하고 있으며, 우중대의 손자가 고려 말 경사(經史)와 역학(易學)에 통달한 역동 우탁이다. 고려공양왕 대에 우현의 10세손인 우현보가 좌시중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 5형제 우홍수(禹洪壽)·우홍부(禹洪富)·우홍강(禹洪康)·우홍득(禹洪得)·우홍명(禹洪命) 대에 각각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예안군파(禮安君派)·안정공파(安靖公派)·집의공파(執義公派)·판서공파(判書公派)를 형성했다. 이 외에 참의공파(參議公派)·봉상정공파(奉常正公派)·문강공파(文康公派)·정평공파(靖平公派)·문숙공파(文肅公派) 등이 있다.
[입향 경위]
백록 마을에 세거하고 있는 단양우씨의 입향조는 우성범이다. 고려 말에 국운이 다한 고려 왕실의 복위를 꾀하던 단양우씨는 화를 피해 당시 밀성부 풍각현 송촌 마을에 우거하였다. 이후 조선 통덕랑을 지낸 명종과 선조 대 인물인 우성범이 더 좋은 터를 찾던 중 당시 선유동의 지형이 중국의 백록동 서원(白鹿洞書院)과 같다하여 선유동에 입향하였다. 우성범이 이사하던 날 많은 눈이 내렸는데, 사슴 한 쌍이 상처를 입고 부엌 안으로 들어왔다 하여 우성범의 호를 백록당이라 했다. 본래 마을 이름도 도학자와 대승(大僧)들이 백의(白衣)의 사슴을 벗삼아 선유(仙遊)와 수도(修道)한 곳이라 하여 선유동이라 불렀으나 이후 우성범의 호를 따라 백록동이라 불렀다.
[현황]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702명의 단양우씨가 달성군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4년 달성 문화 재단과 달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편찬한 『대구의 뿌리 달성』에 의하면, 가창면 우록 2리 백록 마을에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으나 현재는 많이 축소되어 몇 가구만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달성 지역 단양우씨의 관련 유적으로는 가창면 우록리 1098번지에 재사인 백록당(白鹿堂)이 있다. 여기에서는 단양우씨 후손들이 매년 음력 3월 20일 우성범을 추모하는 향사를 지낸다. 마을 뒤에 위치한 최정산(最頂山) 자락에 백록당과 후손들의 업적을 기록한 '단양우씨 백록 유허비(丹陽禹氏白鹿遺墟碑)'가 있으며, 밀양인 우당 허욱이 백록당을 존경하여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백록 서당(白鹿書堂)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