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0999 |
---|---|
한자 | 昌寧曺氏 |
영어공식명칭 | ChangnyeongJo Clan|ChangnyeongJoess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수리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소희 |
[정의]
조계룡을 시조로 하고, 조윤암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개설]
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하는 창녕조씨는 임진왜란 당시 조윤암(曺胤岩)이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구지면 수리 2리 사동 마을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창녕조씨의 시조 조계룡은 창녕현 고암촌(鼓岩村)에 살던 한림학사 이광옥(李光玉)의 딸 예향(禮香)과 용의 아들 옥결(玉玦)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 내려온다. 태어날 당시 겨드랑이에 조(曺)자가 적혀 있어 이광옥이 기이하게 여겨 왕에게 알리자 왕이 성을 조(曺)로 하고 계룡(繼龍)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조계룡은 성장하여 신라진평왕의 사위가 되었으며, 창성 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예향이 창녕 화왕산 용지(龍池)에서 조계룡을 잉태했으므로 본관을 창녕으로 삼았다. 조계룡 이후 문헌의 실전으로 고려태조 왕건의 딸 덕공 공주와 혼인한 조겸(曺謙)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입향 경위]
임진왜란 이 일어나자 창녕인 통정대부 조윤암이 난을 피해 현재의 구지면 수리 2리로 입향하였다. 당시 이 마을은 절이 있었다 하여 사동(寺洞)이라 부르다가 조윤암이 입향하고 개울에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물 사(泗)로 바꾸어 사동(泗洞)이라 불렀다. 이후 이 지역을 중심으로 자손들이 세거하면서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현황]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1,400명의 창녕조씨가 달성군에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4년 달성 문화 재단·달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편찬한 『대구의 뿌리 달성』에 의하면, 수리 2리 마을의 35가구 중 창녕조씨가 30여 가구로 마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관련 유적]
달성군 구지면 수리 2리 사동 마을 내에는 창녕 조씨 문중에서 입향조 조윤암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이사재(履泗齋)와 처사 조상천(曺尙天)을 추모하는 첨경재(瞻敬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