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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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達城徐氏 |
영어공식명칭 | DalseongSeo Clan|DalseongSeoss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1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소희 |
[정의]
서진을 시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개설]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달성서씨는 12세(世) 서사건(徐思建)의 아들인 용계(龍溪) 서변(徐忭)[1605∼1656]의 후손들이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가창면 대일 1리 대일박 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서진은 고려 시대 봉익대부(奉翊大夫), 판도판서(判圖判書) 등을 지내며 나라에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이에 달성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세거하게 되었으며, 서진의 아들 서기준(徐奇俊)과 손자 서영(徐穎)에 이르기까지 3대가 ‘달성군’에 봉해졌다.
[입향 경위]
가창면 대일1리 대일박 마을은 1570년 무렵 영동 김씨들이 처음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1656년(효종 7) 천안 군수인 서변이 허적(許積)·원두표(元斗杓)·한전(韓戰)·윤세교(尹世喬) 등이 반란을 모의한다고 임금에게 고했다가 곤장을 맞고 죽자, 그 후손들이 피신하여 대일 1리 대일박 마을에 정착하였다. 실제 입향조가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달성 서씨 현감공파보(達城徐氏縣監公派譜)』에 의하면 15세 서엄(徐淹)의 부인 월성 김씨와 그의 아들 서한상(徐漢相)의 부인 김해 김씨의 묘가 대일리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또 15세 서혁(徐㷜)의 묘도 대일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서변의 손자 대에 와서 정착한 것으로 추측된다.
[현황]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2,626명의 달성서씨가 달성군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되며, 2016년 현재 대일 1리에는 약 150호 중 50여 호의 달성서씨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달성 지역 달성서씨 관련 유적으로는 달성군 가창면 대일 1리 대일박 마을에 옥계 서원이 있다. 이는 학암(鶴岩) 서균형(徐鈞衡)[1340∼1391]을 주향하고 용계 서변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1798년(정조 22)에 건립되었다. 서균형은 고려공양왕 때의 문신으로 예문관 대제학과 양광도 관찰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