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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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景星 |
영어공식명칭 | Gwak Gyeongseong |
이칭/별칭 | 순서(舜瑞)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홍수 |
[정의]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현풍(玄風). 자(字)는 순서(舜瑞). 아버지는 곽문만(郭文滿)이다.
[활동 사항]
곽경성(郭景星)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자질을 갖고 있어 언제나 어머니를 편안하게 하였다. 나이 10살이 되기도 전부터 부모님이 즐겨하는 것이라면 비록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치는 캄캄한 밤이라도 반드시 구해 주었다. 곽경성의 이러한 행동은 아버지가 위독하였을 때도 그대로 나타났다. 당시 아버지는 오랜 병으로 아주 위독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생선회를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자 곽경성은 엄동설한(嚴冬雪寒)의 한밤중에 성 밖 냇가로 나아가 두텁게 언 얼음을 깨고 한 자나 되는 가물치를 건져 올렸다. 곽경성의 정성이 통한 것인지 위독하던 아버지가 가물치를 먹고 나서는 병세에 차도를 보였다. 그 후에도 곽경성은 더욱 극진한 효도를 다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조정에까지 알려져서 철종(哲宗)[재위 1831~1863] 연간에 복호(復戶)의 영(令)이 내렸다.
[상훈과 추모]
곽경성의 종육대손(從六代孫) 곽종대(郭鍾大)가 집안사람들과 함께 세운 효자 처사 포산 곽공지비(孝子處士苞山郭公之碑)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리 1348-2번지에 위치한 현풍 곽씨 문중의 십이정려(十二旌閭) 옆에 있다. 1919년 조긍섭(曺兢燮)이 지은 「효자 곽경성 처사 비[孝子郭處士碑]」가 『암서집(巖棲集)』 권26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