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801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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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處精 |
영어공식명칭 | Gim Cheojeong |
이칭/별칭 | 순재(純齋)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홍수 |
[정의]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청도(淸道). 호는 순재(純齋)이다.
[활동 사항]
김처정(金處精)은 어려서부터 자질이 특출하고 남달리 총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효성이 지극해서 세인들의 칭송을 받았다. 아버지가 불치의 병으로 30년간 신음하였다. 김처정은 그런 아버지를 10년간 밤낮으로 정성껏 약시중을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세는 더욱더 나빠져서 음식도 먹지 못하고 20년간 사람의 젖만 먹고 살았다. 어른이 사람의 젖만 먹는 것도, 유모(乳母)들을 찾아가 젖을 구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처정은 모든 곡식과 의복까지 팔아 가면서 인근 마을로 젖어미를 찾아다니며 젖을 사다가 봉양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메추리구이를 먹고 싶다고 하자, 갑자기 마당 위로 매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입에 물고 있던 메추리를 김처정의 발 앞에 떨어뜨렸다. 김처정은 기뻐하며 메추리를 잡아 봉양하였다. 또 어느 날에는 노루 고기가 아버지의 병에 이롭다는 말을 듣고서 빨리 노루를 구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는데 때마침 포수가 노루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김처정은 포수에게 산 노루를 잡아 아버지에게 올렸다.
[상훈과 추모]
훗날 고을 선비들이 김처정의 효행을 글로 적어 조정에 올리니 숙종(肅宗)[1661~1720]이 정려(旌閭)를 내리고 빙고 별검(氷庫別檢)[종육품]에 증직(贈職)하였다. 1699년(숙종 25)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옥산동에 김처정·재령 이씨 효열각(金處精·載寧李氏孝烈閣)이 창건되었다. 1799년(정조 23)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대리[현 현풍읍 대리]로 옮겨 세웠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옮겨 세웠다가 2011년에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본말리 662-1번지로 이전해 왔다. 정면 두 칸, 측면 한 칸 규모이고, 왼쪽 한 칸에는 김처정의 현판이, 오른쪽 한 칸에는 김처정의 손자인 김여탁(金汝鐸)의 처 재령 이씨(載寧李氏)의 현판이 각각 걸려 있다.